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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한희정 시조집 '립스틱 지우는 저녁'의 시조(12)

by 김창집1 2026. 2. 18.

 

♧ 추사의 진눈깨비 3

   -동지 무렵

 

갈필 닮은 추녀 끝에

어둠이 힘을 모으네

 

낫에 잘린 수선화

그 향기도 품에 넣어

 

한순간

비백을 친다

동짓밤이 가볍다

 

 

 

♧ 추사의 진눈깨비 4

     -초의 생각

 

입에 문

차 한 모금

뭉게뭉게 구름이라

 

탱자가시

걸린 마음

나붓나붓 꽃눈이라

 

엉겼던

붓끝이 풀리네

응어리가 풀리네

 

 

 

♧ 추사의 진눈깨비 5

    -고향소식

 

날아드는 전갈마다 마음 찢는 비보구나

 

눈 속에 솔잎 끝은 둥그러질 줄 모르고

 

긴 한숨 머무는 곳마다 얼음침이 박히네

 

 

 

♧ 이어도가 저긴데

    -하늘나라 지수에게

 

한번 가면 오지 않는 이상향이 뭐길래

 

무장무장 밀려오는 물이랑이 야속해

 

뒤집힌 파도 언저리 안부 편지면 좋겠네

 

다가서면 또 그만큼 경계 짓는 수평선

 

네가 사는 세상을 금기어로 남겨 놓고

 

유폐를 허락한 바다 달빛만 무량하다

 

 

 

♧ 물장오리

 

1

해도 달도 놀다가는

거울 하나 있어

 

고목들 바짝 엎드려

제 모습을 비추고

 

하늘은 한판 뒤집어

수수께끼 세상을 봐

 

2

고립무원 혼자라도

뿌리는 잊지 않아

 

감청 빛 치마폭에

먼 먼 전설을 이어

 

오늘도 푸른 문장에

물안개 금줄 친다

 

 

              *한희정 시조집 『립스틱 지우는 저녁』 (목언예원, 2025)에서

                                   *사진 : 요즘 한창인 수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