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봄 아씨들 – 박대근
봄바람이
가지도 건드리고
땅도 꼬집어
산야가 터트린 꽃봉오리는
먼 길 눈초리도 낚아 올린다
사람도 건드려
출렁거릴 햇살 덕에
얇아진 옷자락 속을 살랑 들춰도
씽긋 웃은 아씨들
걸어가는 발걸음 소리 위에 활짝 핀 꽃봉오리
삼신이 돌보시어 핀 꽃
어느 꽃이 이 꽃보다 더 아름다우랴?

♧ 소금 – 김미외
소금빵을 바라본다
빵 표면, 바다의 뼈 조각들이 앉아 있다
유골 알갱이 하나를 떼어 혀에 얹는다
군무 그리는 멸치 떼의 날 선 역동이
고요히 오르내리는 갈치 지느러미의
금빛 떨림이 목젖을 긁는다
비탈진 파고 꼭대기에 짓찧던
고래의 물줄기가 싸늘하게 흩어진다
비바람 몰아치는 어둠, 그물 끌어올리는
아버지의 뼛가루가 버석거린다
파도에 몸을 맡겼던 한 생들의 습기가 씹힌다
오늘 하루도 잘살았냐는 질문이 던져지며
피곤으로 안팎 흐물거리는 누추한 몸에
펄쩍 퍼덕임이 튀어 오른다
바다의 생들이 남긴
힘차게 살라는 유언이
심장에 솟구치며 녹는다

♧ 대화 – 김정옥
당신이 곁에서 말할 때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멍청하게 앞에 서있는
소나무 몸통만 바라보았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듬직했으면
생각도 하였습니다
당신이 떠난지 오래된
지금
당신이 한 말에
철 지난 옷 같은
대답을 합니다
그때
따뜻하게 손이라도
잡아줄걸

♧ 가래는 말을 달리고 – 김성중
둥글고 길쭉한 가래
강신보 높은 가지에서
떨어질 때 충격으로
두 쪽으로 쪼개지면
어디선가
말 한 마리
히히힝 나타나서
삼인산으로 달려간다

♧ 밥상 – 나병춘
밥이야말로
최고의 상일세
밥상 앞에 무릎 꿇지 않는 자
어디 있을까
뜨거운 밥알이 혀끝에 닿을 때마다
엄니 밥주걱 향기 어렴풋이 번진다
밥상은 늘 웃는 얼굴로
김치와 국을 거느린 폭군
그 통치 아래
가만히 손을 모으며
밥 한 숟가락에 하루를 바친다
어여쁘고 보드레한
텅 빈 미소
누구의 주름진 눈물인지
누구의 설레는 밥술인지
*월간 『우리詩』 2월호(통권 제452호)에서
*사진 : 조심스럽게 피어나는 변산바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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