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정*
남자 울음에 여자 울음이 올라탄다
이랴 이랴, 울음이 울음을 몰며
등을 친다
꼬리까지 축축한 남자 울음이
여자 울음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맥없이 무너진다
수레바퀴에 눌린 집을 보며
여자는 바다로 이끌려 간다
이사 온 집은 깊다
빗물이 모여 깊고
가로등이 멀어 깊고
목초 더미를 모아 만든
좁은 계단 끝은
자정에 가까워 깊다
깊은 집을 나갈 수 있는 건
울음뿐이다
사방 낡은 밤을 핥다
여자 울음이 사지가 늘어진
남자 울음을 건져 물고
입이 찢어지게 바둥거린다
누런 어금니 사이로
고삐 풀린 아이들이 창문을 흔들고 있다
---
* 말을 부려 마차나 수레를 모는 사람.

♧ 물끼*
가난을 몰랐다
부자를 본 적 없으니
기억하기 어려운 슬픔
물 안에 있으면 물 밖 슬픔이 궁금했고
물 밖에 있으면 물 안 슬픔이 궁금했다
어느 슬픔이 먼저 곪고 아물지 지켜보다
다정히 웃는 슬픔이 물 안이어서
사랑을 욱여 넣었다
매달 속는 슬픔
지긋지긋하게 산다는 걸 몰랐다
다르게 살아 본 적 없으니
만지면 흉터만 남는 슬픔
심이 서글프면 물결이 높게 일고
내가 서글프면 밀물 시간이 빨랐다
허기가 오늘의 슬픔이면
조개껍질은 반짝이고 모래는 부드럽고
황홀한 바다로 소풍 떠나는
물낮에 비친 젖몽우리
아끼고 싶은 슬픔
---
*보름 단위로 9일 작업하고 6일 쉬는데 이를 '한 물끼'라 한다.

♧ 봄 바다
해가 뜨면 바다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빛나는 일
떠듬떠듬 빛나다가
냉이꽃 피워 내듯 밀어 올리는 빛
없던 마음이 봄이면 왜 생기는지
남들만큼 살아지려나
입 밖에 말 떼기도 전에
봄과 몸은 바다로 들어가고
물을 떠나며 애가 타는 건
무엇이 가장 멀어져 보이는지
아기, 집, 유채밭, 저녁
아기들은 한 번 울면 저녁까지 울고
집은 폐질 얼굴처럼 뇌래지고* 저녁까지
유채순은 남아 있으려나
후려치는 걱정에 숨 막혀도
바다는 저녁까지 빛나고
몸은 봄을 기억하고
바다는 봄 소라를 기억하고
빛처럼 울었네
그림자처럼 울었네
---
* '노래지고‘의 제주어.

♧ 성게
포구의 여자들은 이름이 많다
성게 여물을 꺼내는 건
혼잣말을 보는 것 같다
말도 오래 물끄러미 바라보면 여문다
좀처럼 물 위로 드러내지 않는 성게가
반쯤 지워진 얼굴처럼, 검푸른 몸이 바위에 돋았다
사랑과 사랑이 커져
서로를 짓누를 때 터져 나오는 말을 먹으러
겉마음을 속으로 속마음을 겉으로 보내며
기어이 사는 성게 가시는
혼자쓰는 언어처럼 독이 서렸다
한 사내가 사라지고
긴 밤의 표정으로 금이 간 그릇을 채우는
여문 말들의 무게에
섬은 표류하지 않는다
*허유미 시집 『바다는 누가 올려다 보나』 (걷는사람,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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