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혀 5
-명령어
길고 부드러운 근육덩어리
짧게 내뱉는 한 단어
혀
나태한 나에게
행동을 강요하는 한마디
혀

♧ 푸아그라
저들을 옴짝달싹 못하도록 철창에 가두어라
목은 밖으로 꺼내 놓아라
입에 호스를 끼워 물고문하고
단식투쟁 하더라도 옥수수에 콩밥
강제로 먹여라
금속관을 위까지 쑤셔 넣고라도
매일 곡물을 주입해
뒤룩뒤룩 살찌우고
부을 대로 부은 그놈의 간을 꺼내 먹거라
당신의 혀에게 행복을 안겨주거라

♧ 운전 1
-물 흐르듯이
운전을 처음 배우던 날
아버지는 말씀하셨지
치를 운전할 때는
물 흐르듯이 해야 한단다
막히지 않게 부드럽게 흘러가듯
오늘 차를 운전하는데
물 흐르듯
공간만 생기면 스며들 듯
끼어드는 차들
짜증보다 걱정이 든다
물이 차고 넘치면 도로 밖으로
나가버릴지 몰라

♧ 운전 2
-계기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 있고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이 있다
겁이 많아 고속도로 운전도 못 하는
나의 차 계기판에도
엄연히 200km 눈금이 있다
내가 아무리 힘든 일을 하더라도
내가 죽을힘을 다했다 하더라도
죽을 만큼 힘들었다 하더라도
계기판은 고작 100km
아직 100km라는 커다란 여유가
나에게 남아 있음을
운전을 하면서
계기판을 보면서
아직 남아 있는 나의 능력을 본다

♧ 운전 3
누군가 계속 쫓아온다
무서워 더 빨리 달리니
그도 더 빠르게 쫓아온다
그 뒤로 한둘이 아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쫓아온다
무서운 속도로 질주한다
도망가기 시작하면
계속 도망치는 삶을 산다
누가 쫓아와도 조금 천천히
더 느리게 삶을 살다 뒤를 보면
쫓아오는 이 없고
오히려 당신이
앞서간 흔적들을 밟아갈 뿐
앞을 보면 많은 이들이
당신을 인도해 줄 것이니
여유를 갖고 길 가시게
*양동림 시집 『거울상 이성질체』 (한그루,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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