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벚꽃 연대기 – 강상돈
처음의 문은 바람처럼 열려버렸다
숨결 작은 흔들림이 골목을 스쳐 가고
글자를 외우고 가는 새소리만 들렸다
주머니 속 동전이 조용히 움직인다
빛은 기울어가고 말은 점차 사라지고
깡마른 몸만 남았다, 이름 없는 계절에
겹겹 쌓여 피었다 떨어지는 그런 날에
나는 너를 부르지 않고 기억도 하지 않고
무심히 머물고 갈 뿐 아무도, 아무도 없다

♧ 보리타작 –오영호
쓰윽 삭, 쓰윽 삭
낫질 소리 멈출 때면
새* 꼬은 줄로 묶어 쌓은 보리 눌**
택택택
매탁기 소리
두 섬일까 석 섬일까
밭 갈고 달구지 끌던
받갈쇠***는 어니 갔나
고랑치고 수확하는 트랙터 엔진소리에
새들은
하늘에서 빙빙
날아갈 곳 찾고 있다
---
*띠
**낟가리
***밭 가는 수소

♧ 법정사에 안기다 – 이창선
기사년 계묘癸卯일에
뛰는 토끼 가슴으로
서룬 원혼 위무하려
법정사* 품에 드니
지고한 항일의 횃불
맹호 되어 날뛰다
---
*오름 사랑 동호회 회원들은 제주 3대 항일운동의 하나인 무오법정사를 재조명하며 희생된 66위 원혼들의 명복을 빌었다.

♧ 迎秋 二首 - 작시 心陀圓 金正心*
其- 炎中光復節有感/ 麻韻
기일. 염중광복절유감/ 마운(무더위 중 광복절을 보내고)
朝禽所啄果無花 조금소탁과무화
아침새들이 무화과를 쪼아 먹더니
遁迹潛方渺眇處耶 둔적잠방묘처야
자취를 감추고 어디로 갔지
慶節復光年八十 경절복광연팔십
광복 경절이 팔십년 되었다고
國旗高揭見家家 국기고게견가가
집집마다 태극기를 높이 달았네
蒸炎近日稀聞古 증염근일희문고
이렇게 무더울 때는 없었는데
洊至災荒待切加 천지재황대절가
재앙이 계속하여 더 절박해질까
你是何爲紛亂樂 니시하위분란락
그대는 무얼하면서 소란을 즐기나
勤於治道活窮民 근어치도활궁민
다스리기나 잘하여 궁민 살리소

其二 日月易邁/靑韻
기이. 일월이매/ 청운(세월은 잘도 간다)
山腰錦染帶紅屛 산요금염대홍병
산허리는 곱게 물들어 울타리 펼쳤고
火熱大行委頓停 화열대행위돈정
기승부리던 더위는 맥없이 그쳤네.
心憶白雲交幼友 심억백운교유우
흰구름 보며 어릴 때 벗들이 그리운데
淵中秋雨泳魚泠 연중추우영어령
가을비 내리는 연못에는 금붕어가 활기차.
吾常若處圓籬內 오상약처원리내
노상 집안에서만 맴도는 것처럼
卒歲居然五十星 졸세거연오십성
이 집에서 오십 년 세월이 흘렀네!
感此更衣時物變 감차갱의시물변
옷을 갈아입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天恩地澤幾餘經 천은지택기여경
천지가 은혜로운데 몇 해나 남았을까.
〈어휘〉
▲ 朝禽(조금) 아침새 ▲ 啄(탁) 쪼을 탁 ▲ 果無花(과무화) 무화과 ▲ 遁迹(둔적) 자취를 감춤.
▲ 潛方(잠방) 방향을 숨김. ▲ 渺處耶(묘처야) 渺아득할묘, 耶(야)는 의문조사, 어디로 갔지.
▲ 高揭(고게) 높이 달아맴. ▲ 家家(가가) 집집마다 ▲ 蒸炎(증염) 무더위, 蒸찔증 炎 더위염
▲ 稀聞古(희문고) 예부터 들어보지 못함. ▲ 洊至(천지) 다다르다, 이르러 닿다.
▲ 切加(절가)= 더욱 절박함. ▲ 你(니) 그대는, 위정자 일반을 칭함. ▲ 是何爲(시하위) 무얼 하는지
▲ 紛亂樂(분란락) 분란을 즐거워함. ▲ 勤於治道(근어치도) 치도(나라 다스림)에 부지런함.
▲ 活窮民(활궁민) 궁민(궁한 백성)을 살림. ▲日月(일월) 세월 ▲ 易邁(이매) 쉬울이(易), 멀리갈매(邁)
▲ 山腰(산요) 산허리, 산 둘레의 중턱. ▲錦染(금염) 비단금(錦), 아름답게 물들다.
▲ 帶紅屛(대홍병) 울타리를 두르다(帶 두를대). 병풍병(屛)은 측음, 울타리병(屛)은 평음이다.
▲ 大行(대행) 크게 행세하다. 기승을 부리다. ▲ 委頓(위돈) 시들위(委), 꺾일돈(頓), 맥없이
▲ 心憶(심억) 추억하다. ▲泠 서늘할령(泠)은 冷(찰랭)과 통함. ▲ 若處(약처)= 처신하는 것 같다.
▲ 圓籬(원리) 둥근 울타리, 집 울타리를 맴돌다. ▲ 卒歲(졸세) 한 해를 마침. ▲ 星(성) 해(年). 세월.
▲ 幾餘經(기여경) 경(經)은 지나다, 겪다, 통과하다의 뜻.
*혜향문학회 간 『혜향문학』 2025년/하반기(제25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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