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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계간 '제주작가' 겨울호의 시와 시조(4)

by 김창집1 2026. 3. 2.

 

♧ 출발, 오라이 – 홍미순

 

영락(泳樂)리에 택시 한 대

늘 마을 이야기만 모십니다

 

“내일 아침 일곱 시에 오라이

제주시 큰 병원 가 보젠,"

노령 연금 받는 날이란다

 

가벼워진 카드만, 승차시키고

“약국 강 파스 사고 오라이"

 

“점심 고르에 오라이

자장면 한 그릇 먹고 오젠"

 

복지 카드 만료되는 날에는

하루종일 달리는 기사님

 

“딸 집에 갈 거야"

조금 멋 부린 할머니, 서울 가신다

공항으로 출발

 

마을 어르신, 몬딱 단골 이야기

 

해안 길 달리다 만나는 수애기*

해녀 삼춘 “잘 갔다 오라이"

 

흥얼대는 기사님 콧노래 소리

수애기 떼 지나가는 목저문여**

“그 바당에 덕자리 들었쪄”

 

전해오는 태평양 바람도

해상 참호를 건너 이주해온

오래된 마을 이야기

 

낙이 머물다 가는 곳

영락(永樂)리에 다시 찾아 오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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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애기 : 돌고래.

**목저문여 : 썰물에 보이고 밀물 때 잠기는 갯바위.

 

 

 

♧ 신도리 수애기 – 황문희

 

  살아있지?

 

  자맥질을 합니다 더 깊이 더 힘차게 바위 사이

  혼자 물질하지 마세요

  상군 해녀의 경고가 귓속에서 맴돌고 꼬리 대신 핏물을 흘리는 고래가 스쳐 지나갑니다 너를 느낀 순간은 이미 때가 늦었을지도 모르나, 떠나지 말아요 투명한 비닐과 폐그물이 발목을 붙잡습니다 떼어 놓으려 애를 쓰지만 수도 없이 감겨들던

 

  보이지 않았지요 당장은 무사할지도 모른다는 말은 플라스틱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영원히 무사할 수 없어서

 

  꼬리에 꼬리를 물어 바다의 죽음을 예고하며 남겨진 그물코가 얽히고설켜, 수면 위를 갈망하다 볼락볼락 숨이 다하며 어긋나던 두 다리, 허우적대던 두 팔, 누구의 이기 였습니까

 

  너의 몸통도 어쩔 도리 없이 꼬리를 끊어냈습니까

  당장 끊어낸 것들이 모두의 숨을 막을 때까지

  우리의 바다는 살았으니까

 

  전복을 잡던 빗창으로

  발목을 휘감은 폐어구를 가까스로 떼어낼 때

  어두운 바닷물이 폐 안으로 쇠맛으로 밀려들 때

  빠져나온 바다는 남아 있는 숨을 유혹하며 윤슬로 빛납니다

 

  부서져 버린 것들이 저 혼자 수면을 떠돌고

  호오이

  호오이요

  숨비소리를 내며 몸통을 뒤틉니다

  한때는 꼬리가 있었던

  우리 함께 사라질, 살아 있었던

 

 

 

♧ 落葉歸根낙엽귀근 – 김영숙

 

바람도 없는 날에 감잎이 집니다

 

소리 없이 내린 잎이 뿌리를 덮습니다

 

오늘 또 시 쓰던 사람이 뿌리로 걸어갔습니다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었습니다

 

따뜻한 무엇이 휙휙 지나갑니다

 

나에게 핫팩이었던 사람들 이젠 볼 수 없는 사람들

 

 

 

♧ 봄의 예고편 – 문경선

 

카독 카독

도착한 여덟 장 꽃의 인사

 

백서향이 흩날리는

기다림은 끝났어요

 

곶자왈

숲길을 따라서

봄이 환히

미소 짓는

 

 

♧ 맨발 걷기 – 오영호

 

너무 웃자라면 칼날이 허릴 칠 거예요

 

아플까 하지 말고 팍팍 밟아 줘요

 

잔디밭 짜릿짜릿한 기운 용천혈이 뜨겁다

 

 

                   *계간 『제주작가』 2025년 겨울호(통권 제91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