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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대정현문학' 2025년 제10호의 시(1)

by 김창집1 2026. 3. 6.

 

[초대석]

 

♧ [시조] 산안개가 놀다간 자리 – 임성구

 

신록이 온 산자락을 뒤덮고 있는 유월

여름비가 유리창에 종일토록 흘러내리고

커피향 무르익는 감천골엔

한 사내가 앉아 있다

 

무학산 안개 시인이 원고지를 펼쳐놓고

시 한 편 쓰는 동안 귀신 하나 왔다 간다

빼꼼히 얼굴 내밀었다 사라지는 신록 사이

 

애간장의 행간에는 숨바꼭질 한창이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시 퍼즐을 다 맞추면

사라진 귀신이 다시 와서

산수국으로 피고 있다

 

 

 

♧ [시조] 늙은 말의 시간 – 우은숙

 

이 맑은 들판에 가장 깊은 눈으로

대지의 숨결을 오래도록 바라봅니다

햇살에 흩어진 기억 털빛 속에 잠깁니다

 

이제 그는 말없이 누워만 있습니다

들판을 달리던 자유를 기억할까요

살며시 그의 고요를 조심스레 만져봅니다

 

그의 말을 꽃물로 기록하던 가을은

바람에게 작별 인사를 넌지시 건넵니다

천천히 시간이 잠듭니다 그의 발굽 밑에서

 

 

[회원시]

 

♧ 가파도 해녀 – 강창유

 

바람이 일으키는 물결 위에

그리움으로 사랑을 휘몰아 감는 파도

해녀 몸 돌돌 감아

너와 나의 정 얼마나 깊으냐고

소리 소리 지른다

햇빛 따라 해녀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힘찬 물질로 그리워지는 바다 속에서

가파도 해녀들은 사랑의 씨앗

바다 속에 뿌려 놓았으니

그 사랑의 씨앗들

보랏빛 숨비기 꽃으로 피어

언제나 가파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심어 주는구나

 

 

 

♧ 시에스타 – 고혜자

 

오수의 달콤함이 얼마만인가

징긋이 한낮의 폭염속 빨랫줄에

몸을 맛긴 잠자리도 날개를 접었다

 

어차피 지금은 시에스타

너도 자고 나도 잔다

 

 

 

♧ 최고의 선물 – 김영옥

 

매주 토요일은

마라도, 가파도를 바라보는

송악산 건강 걷기 하는 날

아침 아홉 시 섯알오름 주차장에 모여

준비운동 후 함께 걷기 시작한다

섯알오름 고사포 진지에 오르자

모슬포를 '못살포'로 만들었다는 황소바람이

송악산 입구에서부터 거세게

발걸음 가로막는다

 

바람막이 웃옷 깃발 펄럭이며

걷는 7학년 언니들

바람의 언덕을 지나 형제섬을 바라보며

솔숲길 왕복하여 출발지점 모두 도착

마음 맞추는 함께 걷기는 초콜릿의

달달한 맛이 되어

온몸으로 퍼져 흐른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1초씩 늘어난다는 수명

칠천 보 남짓 걸었으니 2시간쯤은 족히

늘린 수명, 오늘 걷기 최고의 선물이다

 

 

                  *대정현문학회 간 『대정현문학』 2025년 통권 제10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