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주
백야의 감옥
적막의 독방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터엉,
비었다
아내가
가고
난
연후!

♧ 雪峯 장영철 화백에게
설봉 자네는 북이고 북채였다
한평생 북을 치며 허공을 울었다
화선지에 맨발로 뛰노는
붓이었고 먹이었다
호탕한 웃음이 울음이었고
울어 쌓는 슬픈 웃음이었다
자네는 술이 있고 물이었다
평생을 그렇게 흐르고 흘러
이제는 산봉우리를 눈으로 덮어
만년 설봉雪峯이 되었구려.

♧ 깨고 싶은 꿈같이
너는 최선을 다 했는가
뭐라 대답할 것인가
깨고 싶은 꿈 같은 일 아닌가
애절하고 애잔한 눈빛
마지막으로 빛나는
별빛처럼이나 애처로운 눈빛
이제 보면 다시는 못 볼 듯이
그렇게 붙잡는 눈빛이라니
몰래 훔쳐보는 듯 애틋한
훔쳐보는 듯이 잔잔한
그늘 같은 눈빛으로
어린 아기가 엄마랑 눈을 맞추듯
이제 볼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듯
한숨 자라 해도
잠들면 다시는 못 볼 듯이
눈을 깜빡이는 사이에도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었다.

♧ 가을 끝자락
이승과 저승 사이
가을 끝자락
가슴속 배꼽 마당
솔개 그늘에
홀로 앉아 맛보는
때 아닌 여백
남 모를 만릿길이
마냥 멀어도
등글개첩 없으니
몸도 가벼워
바람 칼 타고 나는
단풍길이나
귀밑머리 서러운
가을 끝자락.

♧ 하루살이의 꿈
물감을 찍어 마른 잎 몇 개 달린 겨울나무를 그렸다
말리려고 걸어 놓은 흡족한 그림이 바람에 날렸다
찾아 나선 길에 온종일 산과 골짜기를 걷고 또 걸었다
홀연, 내가 꿈속에서 그림을 그렸구나 하는 생각에
희망과 절망이 한 몸인 꿈에서 슬프게 걸어나왔다.
*홍해리 시집 『네가 찾아온 날 나는 내게 없었다』 (놀북,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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