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봄 아가씨
입춘 날 찾아온다는 소식 들은 지
보름을 넘겼건만
봄은 아직도 먼 길에서 바장이며
오고 있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
해바라기처럼
까닭 없이 그리움만 더해갈 뿐
유리창 밖 나무들은
아직도 겨울잠인 채 차가움에 떨고 있다.
기다리네,
산수유의 샛노란 미소가 번질 때면
그간 굳었던 산골 물소리 청량하고
새 청포 잎 입은 봄 아가씨
고운 햇살 품고
우리들 곁으로 사랑처럼 다가올 것임을.

♧ 산 노루와 함께
하트 모양의 하얀 궁둥이서
5월 연둣빛 햇살이 반사되네.
한라수목원 괭이오름*에 터 잡은 저들
곁의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네.
수노루의 짝사랑 찾는 소리
아마도 저들끼리 그 옛적 우리네
호모사피엔스의 언어가 있음직하다
봄 햇살 환한 날
내 마음은 노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낙원의 정원에서
한가롭게 거니는
세속을 떠난 신선과도 같은 착각에
환상의 여유를 부리는 길손이 되네,
---
*괭이오름 : 한라수목원 안의 낮은 산.
*오름길 : 산등성이 오솔길.

♧ 나비를 쫓아다니던 그 소년은
이제는 환상처럼 떠오르는
어느 적부터 생긴
오솔길 따라
꽃 덤불 자자한 고향의 봄 들판
가파른 문명의 세태에 잠겨든
농촌 들녘풍경은
오직 그 시절 기억에서만 맴도는
끝끝내 기록되지 않는 존재일 뿐
하 세월 흘러도 들판 흐르는 남풍에
하늘대는 채소밭 이랑엔
그때나 이제나
변함이 없는데
나비를 쫓아다니던 그 소년은
어디로 갔을까
아롱아롱 기억서린 고향 들판엔
하 세월 머리에 인 그가 서 있네.

♧ 초록세상과 나비
혼자서 걷는 5월의 숲길
심오한 사색이
연초록에 머물고
초록 세상 만발한 들꽃 천지에서
나비의 자유로운 세상을 생각하네,
때로는 솔바람 불어와 나비는
간당간당 흔들리는 꽃잎에 앉아
또 다른 꽃을 찾기에 분주하다
초록에 물든 내 마음
삶의 산수 다 접은 나비가 되어
꽃 세상천지에서
자유로운 삶을 즐기고 픈.

♧ 산중 오솔길 거닐며
장송 그늘에 수줍은 듯 누운
원당봉 산책의 숲길
그윽하게 다가온 솔 향이
정다운 연인처럼
몰아쉬는 심호흡을 다독이네,
봄 하늘은 푸르고 멀기만 하여
장송가지에 걸린 토막 난 쪽빛
바다가 호수 같아라,
가슴속 밀려드는 산새들 노래
은발 날리는 낡은 청춘이
봄볕에 부푼 가슴 어쩔 수 없어
그 옛날이 오늘인 듯
내 마음은
사랑 찾아 노래하는 산새이고 싶네.
*김창화 제5시집 『섬의 아우성』 (춘강출판,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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