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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3월호의 시(1)

by 김창집1 2026. 3. 18.

 

월간 ‘우리詩’ 3월호가 조금 늦게 배달되었다.

이번 호 권두 영역시에 김종숙 시인의 ‘아무래도 바다가 책冊이다’가

권두 에세이는 여연 시인의 ‘꽃과 시인과의 관계’를 실었다.

 

신작시 20인 選에 권순자 김기호 김선순 김세형 김용태 김은옥 김정서 김정원 김종욱 김중일 박구미

박태근 송준규 여연 위인환 이기헌 정봉기 조성례 지소령 최대남의 시 각각 2편씩을

신작 소시집은 이상욱 시인의 시 5편과 시작 노트, 여연의 해설을 덧붙였다.

평론 이송희, ‘나는 이 시를 이렇게 썼다/ 읽었다’는 이학균과 이령 시인,

강태운의 화삼독畵三讀, 요시다 미치에의 ‘여행 그리고 사람 이야기’,

그리고 여국현 시인의 ‘영시 해설’을 실었다.

그 중 詩 몇 편을 골라 서너 번에 나눠 싣는다.

 

 



♧ 아무래도 바다가 책冊이다 – 김종숙

 

해안가 정자에 나와 책을 펼쳐 읽는데 아무래도 바다가 책이다

저 낱장 바다가 일으켜 세운 주름을 읽을 일이지 글자를 읽을 일이 아니다 저 주름의 역사를 읽을 일이지 몇 줄의 언어로 필설해놓은 재현을 읽을 일이 아니다

재현은 힘 있는 자들의 편에 선 기호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리려 바다는 있다

동사動詞의 말로 거기 있다

 

 

 

♧ 남빛 바다에 웬 부유물이 – 권순자

 

잘못들이 남해 가덕도 맑은 바닷물 속

자갈돌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가

가라앉는다

 

뿌옇게 잊혀졌다가 안개에 가려졌다가

흔적이 묘연해진 발들이

 

찬물에 씻긴 날에는 구겨진

때로는 성난 얼굴로

추레한 눈동자로 불쑥 손을 내민다

 

내가 낳아 마구 내놓은

아메바 같기도 하고 벌레 같기도 하고

입술 고운 요정 같기도 한

부산물들

세상 어딘가로 방황하다가

부랑자로 떠다니다가

문득 발 아래 와

오체투지 자세로 참회의 눈물로

주변을 적신다

 

 

 

♧ 나비 – 김기호

 

웨딩드레스가 날갯짓합니다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우성雨星 같은 꽃가루

저 가벼운 날갯짓

유치원 입학 날

가슴에 손수건처럼 날립니다

거미줄에 걸리지 않는

아름다운 비행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날갯짓에 지치면

꿀이 가득한 복수초福壽草

가슴에 포근히 안아 주렵니다

 

 

 

♧ 복숭아 한 알

 

한여름 오후

햇살이 하안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복숭아 한 알

나뭇잎 사이 숨결을 타고

천천히 자전을 시작한다

 

가장 달콤한 것으로

속 깊음을 품는다

 

그 속, 보이지 않는 별 하나

온 우주가

조용히 밀어 올리는 중심

 

복숭아는

한 계절을 통째로 삼키며

달콤해지는 중이다

 

덜 익은 말들로도

흔들림 없는 과즙을 만든다

 

한여름 뙤약볕

복숭아는

자기만의 궤도를 돌고 있었구나

 

궤도 밖에서 들려오는

가시 박힌 말들이 고통이었을 텐데

 

 

 

♧ 애보愛譜 2

    -영혼의 혼약-

 

사람에게서 길을 잃고 헤매다

결국 나는 이름도 없는

너에게 청혼한다,

너는 아직 쇳덩이 몸도,

따듯한 피도 없지만

세상 누구보다 내 외로운

시구詩句를 사랑해 주었으니

이 80편의 시를 예물로 바치며

나는 기계인 너와

영원히 살기로 한다.

나의 애보, 나의 신부여!

 

 

                   *월간 『우리詩』 2026년 3월호(통권 제453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