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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3월호의 시(3)

by 김창집1 2026. 3. 29.

 

♧ 비아그라 – 김중일

 

아 아

총에 맞은 듯

혼자 외마디 소리를 지른 후

옷을 입는다

 

아내가 자린 아침 식탁

불만 가득한 얼굴엔

다음부터 네가 차려 먹어라 써있다

돌밥보다 더 딱딱한 쇠밥

 

종일 이곳 저곳 차이다

새벽 미안함에

외식하려 전화하니

꺼져있다는 친절한 안내

 

널브러진 방안

미처 가져가지 못한

꽃무늬 치마와

물방울 블라우스

 

밤일이 너무 안 맞아 법원에서 봐

낯익은 글씨

손에 쥐었던 비아그라

방바닥에 흩어진다

 

 

 

♧ 사랑하기 좋은 날 – 박구미

 

신발장 맨 위 간에

아끼던 구두를 꺼내 신어 보는데

뒷굽이 덜렁거린다

 

오래 그냥 둔 탓에

발자국 하나 찍어보지 못한 구두

까만 부스러기가 바스러져

 

티격태격했던 그 일로

며칠째 눈길조차 주지 않고

먼저 꺼내지 못한 말처럼

바닥에 굴러다닌다

 

오래 그냥 둬서 미안했다

말 한 마디 못한 채

신발장을 털고 쓸고 닦는다

 

구두 수선 맡기고

저녁엔

막창에 소주 한 잔 하자고 해야겠다

 

 

 

♧ 혼사 – 박태근

 

어쩌면

너의 어머니께서

태곳적부터 잉태해 계시다

오늘날에 너를 낳으셨고

태곳적부터 작명해 놓은 너 이름

아들아 내 부르니

우렁차게 응애 대답하더만

 

어느 사이 혼기가 꽉 차

규수 모셔 혼사 치르니

오늘과 같이 경사스러운 날이 있구나

내 며느리야

내 아들아

고맙다

양가 부모님 일가친척 잘 섬기고

보통 사람들처럼 아들딸 낳아

오대양 육대주에 양가 모친께서 촛불 밝혀 주셨으니

내외가 소통이 잘 된 행복한 둥지 꾸리거라

 

사둔 어르신 어찌 보면

우리는 태곳적부터 맺어질 인연

축하하려 왕림하신 일가친척 내빈 앞에서

애써 키워 사돈 맺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축복 주시려 왕림하신 일가친척 내빈께도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까짓 것 – 송준규

 

포항문화원에서 유명 시인

특강 있다 해서 가법게

버스 타고 참석했다

시집 한 권 사서 친필 사인 받고

시인의 강연은 듣는 등 마는 등

단체 사진 인증샷 남기고

설 머리 청춘 통닭 이층 난간에 앉아

비 그친 영일대 밤바다가 쓰는 시

치맥으로 받아 적다가

늦은 밤 막차에 오르니

웬일, 아무도 없다

이 큰 차 혼자 타고 밤을 가르며

논스톱으로 달려갔다

스물다섯 정류장

소티재 넘고 포항역 지나

포레나 집 앞까지

누구는 기다란 열차 끌고

압록강 건너 단둥 거처 북경까지

무게 잡고 갔다는데

나는,

밤하늘의 달과 별들을

수행단으로 거느리고

 

 

 

♧ 바람의 말 – 여연

 

진실을 말하자면

제 말은 사실입니다

정말입니다

믿어 주세요

 

말 뒤에 의심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입에 붙은 주문처럼 되뇌는 사이

말들은 스스로 흔들린다

어떤 때는 수식을 뺀 담백한 말이

더 진실할 때가 있다

 

말에 군더더기가 붙을수록

바람에 날릴까

발밑이 허전하다

 

 

                                 *월간 『우리詩』 3월호(통권453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