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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제주작가회의 4․3 시집 '스스로 봄이 된 사람들'의 시(2)

by 김창집1 2026. 4. 2.

 

♧ 다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  고영숙

    -학살터의 기록

 

내가 가진 게 구부러진 꿈밖에 없구나

 

깨진 몸엔 흙먼지가 수북이 덮이고

 

슬픔이 깊으면 구덩이도 깊구나

 

쓸려간 흰 뼈를 끌어당길 손발도 없이

 

돌로 쪼개져 매장된 빛의 조각들

 

죽음은 등 뒤에 있어도 서늘하구나

 

혈관을 타고 흐르다 핏줄로 휘어진 이름

 

사납게 우는 짐승의 허기가 흙색으로 짙어지고

 

울음을 발라낸 그 어떤 문장도 목으로 넘어가지 않아

 

쌓이고 쌓여 살빛거죽 꽃잎들

 

여기선 하늘이 가장 멀구나

 

 

 

♧ 강점기? - 김경훈

 

‘일제시대'라고 컴퓨터 자판을 치면

친절하게도 ’일제 강점기'로 변환된다

그렇다고 해도, ‘왜정시대'라고 해도,

그 주체는 일제다

그러면 당시 우리 국적은 일본인 것인가

왜 우리 역사에 우리가 부재인가

’대일 저항시대'라고 해야 하지 않나

 

해방 후 3년을 ‘미군정 시대’라고들 한다

일개 미군 중장 따위가 조선을 점령 통치했다

이건 왜 ‘미제 강점기'로 자동변환 안 되는가

강요된 침묵인가, 알아서 기는 것인가

그러면 당시 우리 국적은 미국인 것인가

일제는 거부하면서 미제는 용인하는가

‘대미 항쟁시대'라고 해야 하지 않나

 

 

 

♧ 제비꽃 – 김광렬

 

옛날 고려를 침범했다가

윤관 장군에게 쫓겨 갔다는

여진족 머리 뒷모습 닮아

오랑캐꽃이라 불렸다 한다

너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하늘의 해와 아주 멀고

땅과 가장 가까운 곳에

앉은뱅이처럼 납작 피어나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4월을 잊지 않았다는 듯

연거푸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선지 봄 들판에 서면

너 제비꽃,

원통하게 스러진 영혼들이

보라색 옷 입고

살아 돌아온 것만 같다

 

 

 

♧ 가을 비 – 김병택

 

행방불명되었던 막내 이모부가

돌아왔다 화장터를 거쳐 여기로

 

친인척들이 모여 위령제를 올렸다

축문을 낭독하는 집사의

떨리는 목소리와 한꺼번에 몰려드는

생각들이 한데 섞여 공중을 맴돌았다

 

나의 카메라 광학렌즈에는

친인척들의 납빛 얼굴과 막내 이모부의

아스라한 얼굴이 수시로 교차했다

 

묘지 주위 여기저기서 두런거리는

소리에 무성한 억새들도 휘청거렸다

 

까마귀떼가 울음소리를 흩뜨리며

진설된 과일들 위를 지나갔다

 

누가 무심코 끌어들인 가족사의 시간과

반쯤 사그라진 촛불이 동시에 흔들렸다

 

눈시울을 붉힌 막내 이모부의 누이가

터지려는 오열을 애써 참는 게 보였다

 

백수를 훨씬 넘긴 막내 이모의

백발 위에 가을 햇빛이 내리고 있었다

 

 

 

♧ 게난* - 김섬

 

여부록 ᄉᆞ부록*

뒷구녁에서 작당질 ᄒᆞ명 뎅기는 건

안 봐도 다 보이주

 

눈 코 입 떼엇닥 부쳣닥 ᄒᆞ명

시상에서 젤로 곱닥ᄒᆞᆫ추룩* ᄒᆞ여보아도

행실머리가 궂어가민 기운이 뒈와져부는* 거주

 

몬딱* ᄈᆞ사불켄

입에 거품 물명 칼춤 추어보앗자

이녁 신세 뒈와지곡 ᄈᆞ사지는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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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난 : 그러게.

*여부록 ᄉᆞ부록 : 자기에게 이롭게 하려고 기회를 엿보는 모양.

*곱닥ᄒᆞᆫ추룩 : 이쁜 척.

*뒈와지다 : 꼬이다.

*몬딱 : 모조리

 

 

                *제주작가회외 간 『스스로 봄이 된 사람들』 (한그루,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