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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제주작가회의 4.3시집 '스스로 봄이 된 사람들'의 시(3)

by 김창집1 2026. 4. 3.

 

♧ 양씨 아미 – 김수열

 

  1

 

  양병칠(梁柄七, 22) 1948년 10월경에 경찰들에 의해 연행된 후 행방을 모르고 있다가, 목포형무소에

복역 중이며 몸이 아프니 약을 보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가족이 받음. 이후 행방불명 상태임. 수형인

명부상, 1949년 7월 5일 군법회의에서 징역 7년형을 언도 받음. 복형장소는 목포형무소로 기재됨.

 

  양병오(梁柄五, 9)는 1948년 12월경 어머니 김공율(金公律)과 함께 밭에 갔다가 경찰들이 찾아오자 형

양병칠이 1948년 10월경 경찰에 붙잡혀 갔기 때문에 무서운 마음에 도망가다가 붙잡혀 산양리(새신오

름' 근처에서 총살당함.

 

  2

 

  아버지 병흡(柄洽)의 이복동생인 병칠과 병오가 무자, 기축년 난리통에, 병칠은 육지 형무소로 끌려가

행방불명되고 병오는 도망가다 잡혀 총 맞아 죽었다는 걸, 양씨 아미는 정말 몰랐을까, 모른 척 말없이

돌아가신 것일까

 

 

 

♧ 제주고사리삼 - 김순남

 

바람 한 줌 들지 않고

햇살 한 모금 내리지 않는 곶자왈에

키 크고 무성한 잎들이

네게는 캄캄한 밤일 수밖에 없었다

 

숨비소리 땅속에 콱콱 눌러 박고

애면글면 포자낭엽 만들어

무성에도 자손 일으켜 살 만해 가는데

 

이 무슨 사나운 광풍이더냐

도틀굴 목시물굴 반못 벵디굴 엉물에

피 토하는 주검의 바다를 건너

이 땅의 시원으로 살고 싶었다

 

작다고 깔보지 마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잡풀때기가 아니다

내가 곧 주인이요 역사요 평화다

 

 

 

♧ 세월 – 김순선

 

바다와 숲을 품은 마을

높은 동산 마당에 동네 어르신들이

나란히 나무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무심히 바다를 바라봅니다

굽이굽이 지나간 파랑이 보입니다

까마득하여

가습이 먹먹해 옵니다

 

골똘한 생각에

유심히 바다를 바라봅니다

지문 같은 기억들이

무딘 날을 세워

가슴을 휘어 팝니다

새록새록

어제 일처럼

부르르 몸이 떨려옵니다

 

영정 사진을 찍듯

멀구슬나무 뿌리 같은 노인들이

말없이 나란히 정물로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따뜻한 햇살 한 줌 해바라기하며

몽롱한 눈가에 걸린 수평선을

넋 놓고 바라봅니다

순비기 가지 같은 기억들이

빌레 위에서

새우등으로

졸고 있습니다

 

 

 

♧ 봄이 오면 – 김승립

   -4.3 파르티잔

 

그해

겨울 하늬바람

 

사나운 눈보라 뚫고

산에 오른 사람들

 

저녁연기 피어오르는 그리움도 접고

아랫목 따순 사랑 기약으로만 남겨두고

 

봄이 하루빨리 오길 비념하며

곱은 손 비비며 싸우다

 

끝내 한라산 시꺼먼 골짜기에 묻혀

언 땅 밑 붉은 피로 흐르더니

 

산자락마다 붉게 붉게 꽃으로 피어나

스스로 봄이 된 사람들

 

해마다 봄이 오면

먼산 들녘에

 

진달래 산철쭉으로

 

피어나는

사람들

 

 

 

♧ 동광리 일몰 – 김신숙

 

저물어가는 하늘에 축축한

저 새의 눈동자는 누구의 눈이기에 저리 붉은가

억새는 어떤 새이기에 주저앉아 울기만 하나

억새는 깃 속에 깃을 기대어 울었다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우는 사람은

새의 얼굴을 닮아서 마을이 불타고

불길과 함께 새들만 날아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그 마을에 가면

산사람들이 까마귀처럼 옛날 옛날 옛날 운다

처어기 뉘게 뉘게 살앗주게

산사람 목소리 한 움큼 심으면*

저물어가는 저편으로 옛날의 풍경이 피처럼 돌고

억새를 한 움큼 심었던 바람이 다시 치솟고

굴에서 살 적에 말이야

죽어가는 할아버지 샛바닥에

어머니가 조를 씹어 드리면

단물이 입 밖으로 흘러나와신디

나는 철이 어성 할아버지 볼을 핥아 먹엇주

살아남은 사람들 이야기를 정리 하다

가끔 음성 파일을 멈추고 까마귀처럼 떠 있다

흰 종이 위에 깡마른

새 발자국 닮은 글씨체로 옮겨 적는다

 

굴 밖으로 나와신디 밤이 참 밝아*

 

우리는 같은 저승을 바라보니까

저기서 떠, 저기로 지는 저 눈동자

눈 녹인 물로 씻고,

겨울 볕에 말린 눈동자

 

저승에 뿌리를 내리고 새의 눈빛이 일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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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으면 : 제주어 '심다는 '잡다의 뜻으로 쓰인다.

*굴 밖으로 나와신디 밤이 참 밖아 : 동광리 큰넙궤에 숨어 있다가 생존한 홍춘호 할머니의 증언.

 

 

              *제주작가회의 간 『스스로 봄이 된 사람들』 (한그루,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