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별이 빛나는 밤에
어떤 스침
고래를 본 적 없던 시절의
어떤 낯섦
잡기장 말고 디스크 자키
아이스크림 이름 같은
들 혹은 셋, 다섯이 부르는
뭉툭한 칼
아버지 머리맡에
흥건한 슬픔
알다가도 모를
C'est si bon
아직도
해독되지 않는
조각난 집의 아득한

♧ 좋은 이별
동태전을 부치다
잊었던 이름이 튀어 올라
이마에 팔등에 심지어 콧등마저
온 집안 살 익은 냄새 노릿노릿 진동했다
훼드라 구석에 앉아 듣는 빗소리는
어디선가 LP판이 타닥타닥 튀는 것만 같고
남몰래 부르던 노래 콴도 콴도 콴도,
관둬
나는 조금 솔직했고
그는 너무 정직했고
얼어붙은 동토라 쓰고
얼토당토라 읽는 자부심
문맹은 서럽긴 하나 죄는 아니잖아
훼드라 발음기호가 [pétrə]인 걸 몰랐어
최루가스 뿌연 골목에서
너는 나의 손을 놓았고
새벽녘 직업 안내소 셔터문이 열려 있었다
꽉 찬 열 달 상주 출신 일수아줌마 심부름을 하고
조금 모자란 두어 달 양평 로스구이 불판 뒤집고
새 학기 들뜬 우편함
검은 봉투에 초록 글씨
나보다 먼저 도착한
그리운 육체
영혼 없이 사는 일은 버거운 일이야
그 집의 동태찌개는 참말로 맛있더라

♧ 무전, 부치다
공으로 부쳐 먹는 밭이라 돌이 많지
공일날은 꼭, 나를 데리고
부쳐 먹는 무밭으로 갔지
아버지, 담이 없는 집 그곳은 지낼 만한지요
돌 틈에서
돌처럼 살다
돌 아래 세 들다
돌아가신,
쉰넷이면 너무 이른 가을
스물셋이면 조금 늦은 봄
그나마 다행인 것은
늦은 봄의 살가움
아버지, 이곳은 돌을 다 치웠어요
당신을 닮은 돌이 그 옆에 누웠잖아요
돌들은 무더기로 살 때 빛이 든대요

♧ 앗, 사루비아
어디서 굴러왔는지
물 내리는 돌 틈에
빨간 깨꽃이 피어
아침이 조금 빨라졌다
어머니 저 꽃은 아무 데서나 잘 자라요
게무로사 물꼬냥에 자명서도 살아지느냐
어머닌 불구멍에서도 살아나셨잖아요
너 막 경 닝끼려둠서 사름 애ᄌᆞ질레?
여름인 듯 가을인 듯
한로 무렵 물폭탄에
저지대 화단이 온통 무너졌는데
동틀 녘 붉은 포효가
번쩍 솟는 것이
앗, 사루비아!

♧ 한못의 초여름
연꽃이 무성하면 마름이 설 자리가 없듯
돌무더기 아래로 그림자 깊게 패이고
허공에 번지는 파문은 누구의 발자욱인가
한때는 우마들이 모여 한 세계를 이루었다지
섬 밖을 꿈꾸던 소년의 검은 고무신 같은,
지금은 낯선 이름이 서로 만나 스며드는 중
*강은미 시집 『흐린 날의 춤』 (한그루,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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