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찔레꽃 연민
5월의 봄 동산
햇살은
그 옛날 산골 소녀다운
하얀 미소의 찔레꽃에 들러붙는다.
너의 방긋한 미소에 홀리어
꽃잎을 따먹던
까까머리 소년은 어디로 갔을까
눈을 감으면 아른거림으로
엮여내는
추억의 새끼줄
은발의 연륜에도 네 앞에 서면
그 때의 동심으로 돌아가기만 하는.

♧ 그 소리 그 풍경들은
아직도 하얀 옷의 한라영봉은
겨울 반 봄 반인 설익은 봄
그러나 복사꽃 피워놓은 들판엔
봄 햇살 자자한데
온통 풀 내음 널어놓은 3월 들녘에
메아리치는 자운영 밭
목메기 엄마 찾는 정다운 그 소리
농로 갓길의 노랑 민들레로 번지는
환한 햇살은 변함이 없는데
마치 전설 속 옛 얘기 같은
농촌 들녘의 그 소리 그 풍경은
다만 기억에서만 맴돌고 있을 뿐.

♧ 6월의 숲길을 걸으며
초여름 찬란한 풍경 속
귓가엔
푸른 잎사귀들 뺨 비비는
소리가 아른아른 들려오네,
수목들은 햇살 내리는
명암 속에서
더욱 선명한 빛을 발하며
생명의 영혼을 누리고 있다
마음은 산 중의 우직한
바위가 되어 틈새 흐르는
계곡 물소리 벗 삼아
6월의 푸른 숲에
스스로 도취되고 싶은.

♧ 봉선화 연정
얇디 얇은 연분홍 꽃잎은
여름날 된 볕이
그리도 반가웠던 것이었다.
다소곳한 마음속 숨겨둔 무슨 비밀이라도 있는 양
산들바람이 스쳐가도 잠자코 흔들리며 하늘대는 미소가
조용히 고백하는 연인의 속삭임인 것만 같아
어느새 여름 가면
화려했던 저 가녀린 꽃잎이
섭섭하게도 삭풍에 낙화로 날리면
아름답고 다채롭던
너를 사랑하는 내 마음도
계절 따라 너처럼
한없이 날리는 낙화 되겠지,

♧ 애월에 가면 7
흰머리 지금이나 어렸을 적에도 마을 뒷산
고내봉에 오르면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수평선 저쪽 청잣빛 큰 관탈과 작은 관탈이
장송들 사이로 오롯하게 다가오고
장송 숲 어딘가에서 다문다문 들려오는
까투리 찾아 부르는 장끼의 짝사랑 노래
햇살 환한 숲 나뭇가지에 앉아 쉬는
산새들 노래처럼 쪽빛 바다 해녀들 숨비소리
남풍에 흐르는 푸른 하늘 흰 구름 마냥
해변에 부서지는 쪽빛 바다의 물너울들.
살면서… 호흡이 가쁘도록 살아가면서
등 너머로 찬바람이 밀어닥칠 때도
애월에 가면
마음속 잃어버린 서정을 찾을 수 있다네.
*김창화 제5시집 『섬의 아우성』 (춘강출판,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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