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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제주시조' 2023년 제32호의 시(2)

by 김창집1 2023. 12. 14.

 

 

목간木簡 - 강영임

 

 

천지사방 아득한 돌길 걷다 돌이 된 것처럼

 

햇빛도 양분도 없이 침묵만 있는 곳에서

 

낯익은 당신이 보낸 그리움을 받아듭니다

 

 

 

 

거울을 보다가 - 강상돈

 

 

아침부터 왜 이리 분주한지 정말 몰라

남의 속도 모르면서 흉내까지 내다니

가쁜 숨 몰아쉬면서 뚫어지게 쳐다보는 눈

 

풀려가는 실타래를 한없이 쳐다보다

기분이 상할까봐 웃음 한번 지어보고

거울 속 또 다른 날 향해 한 남자가 서 있다

 

매일 아침 살며시 미소를 지으면서

여기도 저기도 가지 못할 이력들이

출근길 머리 위에서 하얀 꽃이 맺힌다

 

 

 

 

비움 - 강애심

 

 

인체 화석에서 발견된 그 결핵이

 

끈질긴 전유물로

내 몸을 훑고 갔다

 

넘치는 세상의 곳간

비워야 산다는 듯

 

 

 

 

장다리꽃 - 강영미

 

 

수평의 잣대 들고 나를 재지 마세요

평대리 갯동산 밑 수더분한 바다에도

내 속 다 보일 것 같아 주춤 물러서게 돼요

 

나잇값 자릿값 얼굴값쯤 하는 일이

어린 척 모르는 척 모자란 척일까요?

바람에 날아온 날도 파도 소리 높았어요

 

평생을 산다 해도 길들지 않을 하루

혼자 피고 진다 해도 많이 섧진 않아요

길 위의 여자라구요, 조금 말이 많아요

 

 

 

 

겨울 구절초 고성기

 

 

눈 올 무렵 숲 그늘에

수줍게 핀 구절초

보는 이 없어도 피어

마른 꽃이 되었구나

꽃들아

수고 많았다

내가 미리 보러 올 걸

 

살며시 향을 맡으면

가까이 다가와서

보는 이 없어도 피는 꽃이

세상 어디 나뿐이랴

귓가에

내려놓고선

바람 따라 가는 꽃

 

 

                  *제주시조시인협회 간 제주시조2023년 제32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