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창의 하늘가 – 김미애
아버지 사 준 양산을
평생 천갈이 하시면서
단정하고 흐트러지지 않게 키워 놓은 딸 하나
칠십 년
끌어안았어
쓰다듬는 하늘가

♧ 날아갈지 몰라 – 김미향
해그므니소에 사는 용을 본 적 있나요
솔비나무 움트고 쇠물푸레 꽃피면
발소리 목소리 낮춰요 날아갈지 몰라요
폭풍우 물러난 밤 돌멩이 부여잡고
부엽토 가라앉아 물속 모를 바닥에
친환경 이끼를 먹고 알을 슬어 놓았죠
뇽이라면 어떻고 용이라면 어때요
아가미가 없어도 숨 쉴 수 있는 우리
용하게 벼린 시간이 벽을 타고 올라요
똘똘 뭉친 알들이 지켜낸 해그므니소
흘리고 흘려보내도 점액질 꿈을 꾸는
하늘을 가리지 마요
앞다리가 가려워요

♧ 쪽배 한 척 – 김선화
송호항 갯벌 위로 비스듬 쪽배 한 척
외로운 각도만큼 그렇게 누웠구나
서쪽의 반쪽 반달이 비운 반을 채운다

♧ 문지방 넘은 노루귀 - 김순국
- 왕이메오름
늙은 나무 발아래 실오라기 노루귀
잔털 옷 한 겹으로 꽃샘추위 버티네요
뾰족 귀 살얼음 눈길 발자국소리 듣나 봐요
어디로 갔을까요 무자년 우리 가족
군홧발이 몰아쳐서 총알받이 줄 섰던
굼부리 할머니 품도 우릴 살릴 수 없었어요
어머닌 잰걸음 치며 내 이름을 부를 거예요
이맘때면 어김없이 떨면서도 기다려요
어머닌 피가 땡길 거예요, 흩어졌던 이곳에

♧ 저 늪으로 가자 - 김연미
저 늪으로 가자 기원을 잃은 생명들이여
‘무라’ 였던가 ‘도래’ 였던가 물영아리 물에서 나와
대규모 멸종의 시대를 예감하는 이들이여
중생대 초원 같은 목초지 해치고 건너
초식성 공룡들의 일렬종대 발자국 따라
하늘과 바람의 씨앗 눈을 뜨는 곳으로
우리들의 고향은 애초에 물이었느니
신의 그림자 어른대는 고생대 마법의 시대
아가미 빗살을 걸러 물풀들이 돋아나는
돌돌돌 흘러온 시간 실타래처럼 다시 감겨
발가락 사이사이 물갈퀴 돋아날 것 같은
수망리 목장이 피운 그 늪으로 다시 가자
*젊은시조문학회 작품집 『돌돌돌 흘러온 시간』 (한그루,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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