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을이 1
감나무 잎
똑
똑
지는 날
가을이 찾아왔다
슬픈 눈으로 다가와
앙상한 꼬리 흔들었다
가을아
부르고 나서
식은 밥
국 말아 줬다
목줄을 채우지 않아
배고파도 자유로운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네 영혼이 외려 부럽다
가을비
허기진 하루
한 하늘이 젖고 있다

♧ 가을이 2
가을이 온 지 두 달
아직도 곁에 있다
목줄을 채우지 않아
훌쩍 갈 줄 알았는데
이제는
가을과 함께
겨울을 생각한다
온종일 꼬리치는
세상에 오직 하나
정류헌 잔디밭에
외로움은 이제 없다
스킨십
말보다 깊은 언어
추울수록 뜨겁다

♧ 가을이 3
본능을 드러내도
외려 떳떳하구나
너를 빗대 욕설하는
인간이 부끄럽다
귀여운
개새끼들이
늘어지게 하품한다
감추어도 드러나는
그래서 더 숨기는
먹이 든 인간에게
이제는 꼬리치지 마
가을아
너보다 못한 놈들
여의도에서 짖고 있다

♧ 가을이 4
든 정은 몰라도 난 정은 안다던 옛말
하나도 안 틀리다. 가을이 너 갔구나
아강발 뼈 모아들고 불러봐도 빈자리
목줄을 채우지 않아 자유롭다 말했는데
년 정말 훨훨 날까 다치지는 않았을까
현관 앞 너 졸던 자리 옆구리가 시리다
못 오는 사연 있겠지 그 새 정든 122일
너는 내 친구였고 때로는 아들이었다
나보다 더 따슨 주인 품에 안겨 꼬리치길
잊었던 외로움도 그 옆집 그리움까지
한꺼번에 살아났다 가을이 너 간 후로
함부로 정 주지 말라 그 말 왜 잊었었나

♧ 가을이 5
그래,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너의 집 치우려니
돌아와 꼬리 치는 듯
월동 무
싹둑 자르듯
끊을 수 있다더나
*고성기 여섯 번째 시집 『가을은 보고 싶을 때 더 짜다』 (그림과책, 2025)에서
*시의 주인공은 가을이인데, 그 모습이 없어서 대신 남(방)바람꽃을 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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