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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고성기 시집 '섬은 보고 싶을 때 더 짜다'(10)

by 김창집1 2026. 4. 18.

 

♧ 가을이 1

 

감나무 잎

지는 날

가을이 찾아왔다

슬픈 눈으로 다가와

앙상한 꼬리 흔들었다

가을아

부르고 나서

식은 밥

국 말아 줬다

 

목줄을 채우지 않아

배고파도 자유로운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네 영혼이 외려 부럽다

가을비

허기진 하루

한 하늘이 젖고 있다

 

 

 

♧ 가을이 2

 

가을이 온 지 두 달

아직도 곁에 있다

목줄을 채우지 않아

훌쩍 갈 줄 알았는데

이제는

가을과 함께

겨울을 생각한다

 

온종일 꼬리치는

세상에 오직 하나

정류헌 잔디밭에

외로움은 이제 없다

스킨십

말보다 깊은 언어

추울수록 뜨겁다

 

 

 

♧ 가을이 3

 

본능을 드러내도

외려 떳떳하구나

너를 빗대 욕설하는

인간이 부끄럽다

귀여운

개새끼들이

늘어지게 하품한다

 

감추어도 드러나는

그래서 더 숨기는

먹이 든 인간에게

이제는 꼬리치지 마

가을아

너보다 못한 놈들

여의도에서 짖고 있다

 

 

 

♧ 가을이 4

 

든 정은 몰라도 난 정은 안다던 옛말

하나도 안 틀리다. 가을이 너 갔구나

아강발 뼈 모아들고 불러봐도 빈자리

 

목줄을 채우지 않아 자유롭다 말했는데

년 정말 훨훨 날까 다치지는 않았을까

현관 앞 너 졸던 자리 옆구리가 시리다

 

못 오는 사연 있겠지 그 새 정든 122일

너는 내 친구였고 때로는 아들이었다

나보다 더 따슨 주인 품에 안겨 꼬리치길

 

잊었던 외로움도 그 옆집 그리움까지

한꺼번에 살아났다 가을이 너 간 후로

함부로 정 주지 말라 그 말 왜 잊었었나

 

 

 

♧ 가을이 5

 

그래,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너의 집 치우려니

돌아와 꼬리 치는 듯

월동 무

싹둑 자르듯

끊을 수 있다더나

 

 

   *고성기 여섯 번째 시집 『가을은 보고 싶을 때 더 짜다』 (그림과책, 2025)에서

       *시의 주인공은 가을이인데, 그 모습이 없어서 대신 남(방)바람꽃을 실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