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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4월호의 시(2)

by 김창집1 2026. 4. 20.

 

♧ 발 없는 자리 – 장성호

 

얼마 전 당신은 힘든 몸을 이끌고

이곳에 잠시 머무르셨지요

 

당신은 뼈만 남은 손으로 제 등을

어루만지시며 언제 다시 올지 모르겠다

하시며 울먹이셨지요

 

기다려도 기다려도 당신은 오시지 않네요

 

제가 발이라도 있으면 당신에게 직접 문안

인사라도 드리고 싶네요

 

아 저기 당신 닮은 분의 발자국 소리

들리네요

 

 

 

♧ 돌아가는 길 – 임미리

 

흰 천에 둘러싸인 이와 대책 없이 마주한다.

건장한 사내, 그이를 둘러메고 곡도 없는 병실에서 나온다.

이제 막 레테의 강을 건넜을지 모른다.

 

벌어진 마른 입술 사이, 한 방울의 물을 떨어뜨린다.

극도로 거부하는 외마디 소리 병실의 적막을 흔든다.

굳게 닫힌 눈꺼풀을 올려 멍한 눈동자를 바라보면

질끈 두 눈을 감는 것으로 거부권을 행사한다.

 

바디 물티슈로 얼굴을 닦으면 잠시 찡그릴 뿐이다.

각질이 일어난 메마른 팔과 손을 닦는다.

앙상한 벼만 남아 있는 다리와 발도 닦는다.

마디가 온전치 못한 손과 통통 부은 발을 마사지한다.

당신은 감긴 두 눈을 좀체 뜨지 않는다.

 

처음에는 양손이 묶이더니 양발조차 묶였다.

차가운 병실에 들어서면 손과 발을 푼다.

음식과 물을 거부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물으면

어느 날은 '그래'라고 하시고

어느 날은 질끈 감은 눈을 다시 한번 감을 뿐인데

하실 말이라도 있는 듯 오늘은 눈가가 촉촉하다.

 

세상살이에 수없이 부서졌을 당신의 마음

헤아리는 것도 잠시뿐이었다.

 

생로병사의 마지막, 돌아가는 길을 찾아 헤매고 있는

당신의 길이 가까워졌음을 알면서도

나는 조용히 병실 문을 닫고 나선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눈에 밟히고 허전해진 나는

목구멍으로 밥알을 욱여넣는다.

 

 

 

♧ 축제 – 이영란

 

아빠,

단풍이 뭐야?

 

먹어보지 못한 사탕은

무슨 맛일까

 

언덕엔 꽃들이 가득했어

 

마음을 열면 문제가 풀립니다

선생님이 말했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피어도 꽃이 아닌 꽃

 

얼굴 없는 얼굴들

 

친구의 손가락은 달콤했지

써도 써도 질리지 않는 유서처럼

 

우리는 마음을 열지 않아도

서로의 언덕이 되었어

 

여기가 어딜까

 

꽃들의 울음소리

 

따뜻한,

 

그날 난 가면은 안 썼어

아직 내 얼굴을 모르거든

 

아빠도 잘 자.

 

 

 

♧ 이별 – 이상연

 

눅눅한 카카오톡을

열었다 덮었다

닦았다 불었다

 

차가운 액정 속

유통기한 지난 진심 앞에

비통하게 버티는

 

우리가 가장 뜨거웠던 시간의 마지막 잔해

 

읽히지 않는 숫자

 

 

 

♧ 망각 – 이산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오랜 세월 특별 대우를 자처하던 간호사가

늙은 미소로 묻는다

 

- 이름이 뭐였죠?

- 간호사님과 같잖아요?

 

이제는 자신의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다며

요즘은 분노할 일도 희미해져

잠이 잘 온다고

 

 

 

♧ 바람이 그려낸 탱화 – 이대의

 

무스탕*에는 시도 때도 없이 흙먼지가 날린다

하늘이 가까이에서 숨 쉬는 바람이 닿기 때문이란다

 

무스탕에 가고 싶다

 

아버지의 숨 쉬는 바람은 무스탕 바람이었다

일곱 식구 온 가족이 함께 포개 자는 조그만 방

아버지는 매일 나를 껴안고 잠들었다

피곤함에 지쳐 코 고는 바람이 내 귓가로 불어오는 밤이면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하는 삭막함이 밀려왔다

아버지 숨 쉬는 바람이 싫어 돌아누워

아버지 등 뒤에 숨겨진 에베레스트 짐을 보지 못했다

등 뒤에 숨겨진 짐 무게를 견디기 위해 코 고는 소리란 걸 몰랐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흙먼지가 시도 때도 없이 불어오던 시절

아버지는 황막한 무스탕에 서 있는 나무였다

 

거센 에베레스트 바람이 불어

위태로운 모습이었을 때 바람벽을 쳐주고 싶었다

곁에서 지켜 주고 싶었으나

쉴 새 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밀려 바람벽도 치지 못했다

그 나무는 결국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꺾이고

나무는 뻣뻣하게 서 있었다

부러진 나무 사이로

아버지 등 뒤에 숨겨졌던 에베레스트 산맥이 보였다

온종일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은 설산

설산에서 아버지의 숨 쉬는 바람이 불어왔다

 

무스탕에 가고 싶다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때 보지 못한 아버지의 에베레스트의 큰 짐을

시도 때도 없이 불어오는 흙바람을 등으로 막고 잠들었다가

돌아누운 내가 이불을 차내 버리고 자면

어떻게 알고 깨어 이불을 덮어 주던 아버지

아직도 남아 있을 아버지의 숨 쉬는 온기를 품고 싶다

 

고단한 밤이면

장승이 되어 버린 무스탕의 부러진 나무에 금줄 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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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 네팔 중북부에 위치. 문명의 입김이 닿지 않은 거칠고 황량한 곳. 히말라야 환상적인 풍경을 지닌 은둔의 땅.

 

 

                           *월간 『우리詩』 4월호(통권 제454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