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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고영숙 시집 '꿈을 나눠 먹어요'의 시(4)

by 김창집1 2026. 5. 1.

 

♧ 가족들의 방

 

착한 돌봄은 주관식이에요

겁 없이 뛰어내리다 연민과 희생 중간쯤에 머리가 끼었어요

장애 등급 선 하나가 그어졌을 뿐인데

서로를 끌어안은 채 맨홀 속으로 미끄러지고

냉담한 살, 따뜻한 피가 서로 부딪치며

팽팽한 질감의 맨살 냄새가 깊어져요

같은 시간에 반복되는 강아지 산책은 패스를 외치고

배경처럼 서 있는 엄마는 점점 구석을 닮아가고

심장에 가까울수록 사람이 없네요

기도와 기억으로 뒤섞인 감정들은 서로를 정리 중이고

미안해, 고마워, 잘 관리되는 식물들마다

겉도는 억양에서 통증이 묻어나고

종종 자는 적을 하는 떫은맛의 엄마를 뱉어내요

맨얼굴을 들켜버린 약점을 가족이라 부르는

엄마의 착한 걱정은 지의류

눈물 없이도 잘 자라거든요

 

 

 

♧ 반야(半夜)

   -꽃무릇의 말

 

  태어나기 전의 당신이 꽃대에서 나를 꺼내 투명한 태동을 나누었네

 

  내 몸의 출처는 붉은 밑줄 그어진 달 뜨지 않는 밤 당신이 오래전 피고 떨어지면 나는 이제 막 돋아나 이파리와 가지로 갈라졌다가 낮과 밤으로 갈라졌다가 어둠이 묻어나는 한 줌 흙을 더해 살과 흐린 피로 갈라졌다가 한순간 몸을 바꾼 인연이 갈맷빛 생가지를 휘감으면 창백한 실핏줄이 툭, 열리고 닫히는 태생의 경계마다 단내나는 잠이 쏟아지는데 같은 하루를 나눠 써도 당신에게 말하지 못하였네 스스로 날을 세워 나를 던진 그 순간부터 버티고 살았던 내 꿈의 반, 마주치지 않는 엇갈린 날들을

 

 

 

♧ 신숨비소리

 

  깊은 곳은 조심해야지

 

  속긋 한번 그어보지 못한 난바다, 무슨 빗금이 이렇게 많은지 혼이 나면 숨고 싶어 갇혀 버린 물살인데

 

  바다를 벗지 못하고, 학자금 대출을 벗지 못하는 나는 하얀 물방울, 날개보다 가벼운 비정규직, 몽고반점이 생길 때부터 물결 소리를 배워야 하는데

 

  둥둥 떠다니는 물음표들

 

  달라붙은 살 비린내보다 절여진 바다 내음을 동경하다 여기저기 멍이 들었죠 바다를 입은 나는 무겁고 실업수당은 가볍거든요

 

  먹빛 수면 위는 팽팽한 장력의 노동, 호흡이 익숙해질수록 얌전해진 감정선을 스캔하지만 몰래 눈가에 튀어오른 물방울에는 그만 젖을래요

 

  다정하지만 저 수심은 표정을 읽을 수 없어요 바다도 파도를 벗으면 나처럼 그림자만 남거든요

 

  바다의 프로필에 물거품이 늘어나요 엉켜 있는 탯줄이 춤을 추고 나는 짠 내 나는 물너울 꽃으로 흔들려요

 

  흰 물결, 검은 물결, 물의 감정들이 뒤섞이는 소용돌이를 끝까지 움켜쥔 채 들물 날물 가르는 물살이 되어볼래요

 

  꿈들, 날아오를 숨비소리

 

  언제부턴가 나도 소금기 흥건한 몸, 칠흑 같은 손금 속을 걷다가 헤엄쳐 오는 물고기를 베끼는 순간, 참았던 숨을 몰아쉬는 내 몸에도 단단한 비늘이 돋아났죠

 

 

 

♧ 학습

 

대가리, 눈깔, 이빨, 주둥이

 

원래는

동물의 것이었다

 

물고 물리는

겁먹은 인간들이 재빨리 습득하는

 

아가리, 모가지, 뼈다귀, 새끼

 

허기가 질수록

 

길이지는 꼬리

 

횟수가 늘어나고, 짐승에 가까워진다

 

 

 

♧ 어떤 용서

 

전생을 슬쩍 끼워놓은 나의 운명에 신은, 끝까지 오리발이었지만

 

견고해진 눈물, 나는

더는 신의 사회성을 바라지 않는다

 

 

             *고영숙 시집 『꿈을 나눠 먹어요』 (여우난골,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