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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양전형 시집 '난 다시 필 거야'의 시(완)

by 김창집1 2026. 5. 2.

 

♧ 설유화雪柳花

 

그대를 생각하다 참이 들면

저렇게

눈부신 꽃이 피어버리는 거였구나

눈 덮인 밤 도시의 미끄러움을 타고

접을 수 없는 운명의 날개 파닥이며

그대 생각 속으로 잠을 몰고 갔었네

 

제 몸 떠난 종소리가 허공으로 사라지듯

긴긴 밤 하얗게 밝히며

그대 생각 속으로 줄줄이 들어가 사라진

내 백혈구들의 끈끈한 몸짓이라네

 

버들가지처럼 휘늘어서서

그대 생각 속에 참든 나

봄밤 해무 속 품처럼 아늑하더니

 

나의 시간과 너의 시간이 마주하여

너의 눈물과 나의 눈물이 피었네

 

그리움이 모여들면 저렇게 피는구나

어차피 찰나일지라도

저건 분명, 선명한 우리들 꿈속이라네

 

 

 

♧ 그대 이름 속에

 

오늘도 그대 이름 속에 들어가 앉았다

세상의 모든 그리움이 몰려든다

미처 말하지 못한 나의 고백들이

이름 속으로 들어오려 기웃거린다

목이 쉬고 애가 타고

오한과 몸살을 앓고 있는

그 언어들이 기웃거릴 때

그대 이름 속에 앉은 나는

눈에서 나오는 푸른 섬광의 슬픔을

눈물이다 한 토막, 잊어라 한 토막 베어낸다

그대 이름 속은 언제나 가을이다

떨어지는 게 낙엽만이 아니다

그대를 그리며 봐오던 별들이

내 맘처럼 서서히 차오르던 달들이

수많은 상념을 낳으며 떨어진다

가을바람이 문을 두드리며 지나간다

문을 열면,

해끔한 얼굴의 그대가 먼 곳에 있다

오늘도 그대 이름 속에 그대는 없고

또아리 틀고 동이 선 꽃으로

나는 목숨처럼 외로이 앉아 있다

 

 

 

♧ 이녁 생각

 

눈이 와도

이녁 생각

비 와도 이녁 생각

 

나 생각은 그자

서러레 ᄃᆞᆮ는 보름ᄃᆞᆯ

 

뒤뜰에

울럿이 앚안

프랑스 조각가 로댕

 

 

 

♧ 너꽃

 

또다시 봄 됐다

오만 가지 꽃 피었다

하나씩 잊혀서 가는 꽃 이름들

 

오직 하나

잊히지 않고

늘 피어 있는 꽃 하나 있다

그건 너, 그 이름 너꽃

 

 

 

♧ 뚝

 

한 가닥 목숨 짧아질수록

내 시도 짧아져 간다

 

이즈음

안개꽃 한아름 품은

여자를 만났지만

 

뚝!

한 글자의 제목

한 글자의 시가

장미꽃으로 뜬 내 눈을 보며

안개비처럼 운다

 

뚝!

 

 

♧ 내 안에 사는 그대

 

자꾸 나를 찾아드는 여자,

폰 속 그녀의 주소를

가을 숲길 같은 내 안으로 이전시켰다

다가오던 겨울이 순식간 녹고

구석구석 봄이 꿈틀거린다

 

이제 내 안에 사는 그대

당구장에 술집에 낙화하는 벚꽃길에

미지의 꿈길에

내 손 꼭 잡고 다니는 그대

오늘은 봄비 우산 속

라일락꽃 무더기로 피워 올린다

 

 

 

♧ 가을바람

 

이즈음

방에 들앉아

잠과 꿈으로 산다

긴 잠을 미리 연습하는 것과

소년이 되어 세상 시작하는 꿈

 

내 잠과 꿈을 비집고

가을 태풍 온다는 전갈

천둥 번개

날 세우며 날아들고

 

산등에 숨었던 낡은 비

굵은 주름살처럼

허공을 검스레 긋는다

창가에 닿는 바람이 차웁다

 

 

                  *양전형 시집 『나 다시 필 거야』 (한그루,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