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나인데 둘인 나라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 저의 아이가 확실합니다
반만년을 동고동락하다
경술년 국치일에 잃었던 불쌍한 아이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 저의 아이가 확실합니다
이제 새롭게 태어난 대한이입니다
옛일은 신경 안 쓰고 살아갈 아이입니다
양부모라고 자처한 이가
청와대에 성조기를 게양하며 말했습니다
- 그럼 아이를 허리에서 둘로 쪼개 나눠 가져라
어찌 자식을 둘로 갈라 죽이려 하냐고
삼삼오오 모여서 항의하고, 봉화를 올려봐도
반만이라도 가지겠다고 우긴 사람들이 윽박질러
반쪽짜리 두 아이를 가진 나라
그래도 굳세게 생명을 이어가는
하나인데 둘인 나라
진정 엄마는 누구인지 생각도 안 하고 사는
하나인데 둘인 나라

♧ 그것만이 내 세상
지갑에 고이 간직한 작은 소망을 본다
띵똥거리는 대출 만기 문자들을
일거에 날려버릴 희망이
그것밖에 없다는 게 슬프다
주말마다 펴보는 로또 용지
그것마저 버려지는 더 슬픈 내 세상
그것만이 내 세상

♧ 부모
1. 계엄
평온한 하루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을 생각하는데
아버지께서 느닷없이 물으셨다
내가 아버지로 보이니?
몇 해 전 어머니가 웬 사람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했는지
이상한 행동을 해서 감옥 갔던 일이
아직 머리에서 사그라지지 않은 터라
목덜미에 식은땀이 맺혔다
2. 형제들
- 여기 계신 분은 우리 아버지가 절대 아닙니다
자식들에게 총칼 들이미는 그런 사람이
우리 아버지일 리는 절대 없습니다
여기 계신 분은 진짜 우리 아버지가 맞습니다
전에 어머니도 이상한 행동을 해서 갈라설 때
지키지 못해 아쉬웠는데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
우리 아버지가 확실합니다
빨갱이 처단 얘기하는 걸로 봐서
우리 아버지가 분명합니다
자식을 너무나 평범한 일상을 사는 자식을
빨갱이 운운하며 잡아 죽이겠다는 사람을
아버지라 우기는 형제가 있고
절대 아버지가 아니라고 외치는 형제들이 있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어머니는
지켜야 한다고 핏대 세우던 분들이
다시 몸에 태극기, 성조기를 두르고
아버지가 어떤 행동을 하든 지킨다고 설친다
다른 형제들에겐 죽이겠다 했지만
자기들에겐 잘살게 해줄 거라 믿는 사람들이 있다

♧ 아침 8시
한 아이가 울고 있었다
닫힌 문 앞에서 울고 있었다
아이를 데려다 놓고 일터로 가는
엄마도 울고 있었다
매일매일 눈물 반 다짐 반
한 아이가 울고 있었다
10년 전 유치원에 보낸
5살 내 아이가 울고 있었다
울지 말라는 말보다
기다릴 수 있지?! 기대 반 다짐 반
엄마의 마음이 울고 있었다

♧ 겨울나무
9만 원이나 하는 뷔페 식사권으로
먹는 시늉만 하며 사진만 찍고 나오며
살찔까 봐 못 먹겠다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머니가 생각난다
식당에 가면 아들, 딸 많이 먹으라고
자신은 배부르시다며 먹는 체 마는 체하셨다
어머니는 늘 나에게
배불리 먹고 다니라셨다
배도 좀 나오고 살쪘다는 소리가
제법 성공했다는 인사치레인 시절을 사신 어머니
젊어서는 가난해서 못 먹으셨고
나이 들어서는 이도 부실하고
창자도 부실해져 뼈마디 앙상하게
겨울나무처럼 겨울에 돌아가신 어머니
식당에 가서 잔뜩 음식 시켜 배불리 먹고는
올챙이처럼 나온 배 두드리며
서천 꽃밭에 계신 어머니께 조용히 속삭입니다
어머니 이제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어머니 저 배불리 먹고 다닙니다
*시 : 양동림 시집 『거울상 이성질체』 (한그루, 2025) 에서
사진 : 요즘 한창인 실거리나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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