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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허영선 시집 '우린 천둥의 밤을 지나온 자들이어서'(3)

by 김창집1 2026. 5. 10.

 

♧ 멸치 떼

 

땅가슴을 긁었다

돌 틈을 넓혔다

손톱이 없어졌다

일곱 살의 내가 구멍에 눈을 대었다

바다로 직하하는 구멍 밖으로 동동 머리칼들

 

보이지 않았다

바다가 어디야?

바다를 결었다

바다를 밀었다

물에서 불렀다

엄마 아버지 오빠 동생을

 

사람들이 붕붕 뜬 내 안의

물을 빼내고 있었다

나는 고작 열 살

울지 않았다

 

그날 이후 떠나지 않는

내 생의

멸치 떼

 

 

 

♧ 붉은 것들!

   -김연옥

 

그거 아나

오래전 그때

서른넷 작은아들 새 집 샀다고

산비탈 새 아파트로 나 혼자 찾아갔어

 

울타리 밖 붉은 것이 먼저 내 눈을

확 덮쳐오는 거야

그 붉은 것들!

마구마구 바닥으로부터 달려오더니

내 가슴 위로 엎어지는 거야

 

땅을 향해 번쩍 쳐든 그것들

우두커니 서 있는 것들

아이쿠!

꼭지차 탁탁 떨어지며

허공을 메우는 거야

나도 모르게 돌덩이 하나 날 누르는 거야

아니지 악몽처럼

구멍으로

그것들 폭포로 쏟아졌다는 것이 맞겠지

 

바로 그때, 내가 본 거야

이 눈 저 눈 위 풀썩이던

삶과 죽음들

난 최종 선언했어

 

“니네 이 동박낭 다 메여불라

안 그러면 다신 안 오켜”

 

근데, 어느날 동백이 막 날 쫓아오는 거라

자세히 보니

그 위로 찾을 수도 만날 수도 없는

저 바닷속 혈육들 말갛게 올라오고 있는 거야

 

이제 내가 새로 이사 간 집 길가에

동백낭 세 그루 살지

풀 뽑고 비료 한 줌 내가 주는 거야

 

그거 알까

이제야 건져냈구나 연옥이 기분

이제야 올라갔구나 연옥이 기분

 

 

 

♧ 고백

 

그럴 리야 없겠지만

밤마다

미친 바람이 참 속을 맴도는 거야

타버린 집 마당 큰 막살이 명석들이

우루루 내 앞으로 무너지는 거야

수만의 새들이 휙휙 멍석 밖으로 날아가고

언니의 슬픈 눈동자가 우우우 떠도는 거야

 

그해 겨울 후다닥 언니가 허덕이며 달려왔어

 

-아까짱아,

나 여기 곱았젠* 마라

 

-우리 언니 멍석에 안 곱아수다

순간 마당의 내가 한 발에

달려온 시퍼런 그들에게 그랬어

 

그들은 순식간에 빙빙 멍석을 열고

언니를 모래밭으로 끌고 갔어

 

동백꽃이 아무리 곱다 하여도

난산리 문길만큼 더 고운가

 

하늘천지 이 노래 울리던 바로 그 언니

동동 구르며 언니를 봤어

어리석은 울부짖음이있어

 

아, 이건 일생 누구도 모르는 일

언니야 미안해

 

---

*숨었다고(제주어)

 

 

 

♧ 불칸쇠

   -김순혜

 

누구냐

이리 휘릭 저리 휘릭 매일 밤 내 등을

휘젓는 너는

숨죽인 흉터를 파고드는 너는

 

열두 살 등바닥 날카롭게 후비고 간

불칸쇠 하나

몸에 궂은 피가 꽉 차서 밭 틈에 박힌,

하늘이 왁왁

 

마흔여섯 해 뱅뱅 함께 산 그 먼 데서 온

포탄 껍데기

 

누구냐 찌륵찌륵

오래된 내 등으로 출렁이는 너는

내 심장을 건드릴 때면

내 깊은 폐 한 간 출렁출렁 흔들리죠

불에 타고 다시 살아난 나무를 봤죠

불칸낭만 있다고 생각했어요

 

내 몸은 불의 몸

잊고 살았죠 엎드려 바닥에 있을 땐

숨죽인 그 불간쇠 하나가

송송송 내 몸에 들어와 아픈 소리 하죠

 

열두 살 등바닥 날카롭게 후비고 간 자리

날카로운 송곳 껍질처럼 휑하니 뚫고 온 그것

 

가만 보니 이건 그래요

후비면 후빌수록 아픈 사랑 같다는

 

---

*김순혜 (당시 12세, 작고)

  4•3시기 소몰이하고 오는 오빠를 마중 가던 중 갑자기 날아든 군인들의 포탄이 큰 바위를 강다. 그 파편들이 그녀의 몸에 박혔고, 이로 인해 평생 후유장애의 삶을 삶았다.

 

 

               *허영선 시집 『우린 천둥의 밤을 지나온 자들이어서』 (마음의숲, 2026)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