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서大暑를 보내며
가로수에서 번지는 매미들의 절창
더는 뜨거울 수 없는
한여름의 절정
하늘에서부터
땅과 바다에 이르기까지
온누리에 꽉 차 넘치지만
온몸으로 받아 넘기는 이들
시내 도로변 공사 현장
까무스름하게 그을린 얼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삶의 한 귀퉁이를 적신다.

♧ 정오의 오수午睡
산들바람에 잔물결 일렁이는
칠월 하순 서부두 내항
정박한 어선들 밤을 낮 삼아
밤바다에 불 밝히며
삶을 건져 올리던 저들이
한가로이 오수를 즐기고 있다
브리지 위 마스트로 내리쏟는
강렬한 햇살을 벗 삼아 엮어내는
지난밤 치열했던 삶의 얘기들
밤바다 그리고 항구 삶의 두 공간
낮을 밤 삼아 오수로 보내는 정오
몇 시간 후면
뱃머리로 석양을 맞대고
다시 또 이어가야 할 밤바다 항해.

♧ 장미의 계절에
햇살 환한 초여름 만발한 장미꽃이
유럽 어느 귀족 가문의 에레나*처럼
곱디고운 미소로 내 마음 유혹하네.
흰 머리 낡은 청춘에도 사랑을 품었기에
내 너를 탐하는 나비가 되어
네 미소와 향기에 몰입이 되고
이 찬란한 계절에
삶에 맞닥뜨리는 어지러운 것들로
외롭다는 생각들이
너와 함께 있음에 앙금 져 가라앉고
햇살에 뺨 부비며
다가드는 성숙한 아가씨와도 닮은
너의 애틋한 모습에
흐르던 시간도 멈추고 있네.
---
*에레나 : 아가씨의 스페인어.

♧ 창포의 계절
단오를 넘긴 지 며칠
햇살 붐비는 탄천*의 둔치
노둣돌 사이 여울지는 물소리
강변은 초록에 휩싸이고
사람들은
창포의 푸름에 휘둘리어
남실대는 강물에 떠 흐르는
실버들 잎인 듯
실바람에 불리는 꽃잎인 듯
넉넉한 강변 둔치에다
초여름 추억을 남기고 있다.
---
*탄천 : 경기 성남시 한강지류.

♧ 뱃고동 여운
만남으로 행복한 사람
헤어짐에 외로운 사람
기다림에 초조한 사람
뱃고동 여운이 깔린 산지항* 제3부두
출항의 뱃고동 울리면
저마다 품은 사연
가지만 아주 가는 것이 아니기에
만남도 헤어짐도
가슴으로 맞대는
나들이의 숙명적 삶이
늘 수평선을 건너야만 하는 것이기에,
황혼 스미는 연륙의 길 따라
멀어져가는 카페리
잘 갔다 온다는 말 대신
긴 여운의 뱃고동 소리만.
---
*산지항 : 제주국제항.
*김창화 제5시집 『섬의 아우성』 (춘강출판,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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