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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진숙 시집 '잠깐이라는 선택'의 시(6)

by 김창집1 2026. 5. 21.

 

♧ 해삼

 

어둠이 건너온다

일생이 물컹하다

 

물 밖으로 나온 고모는 금세 단단해진다

 

사는 건

단단해지는 것

 

늦은 저녁상을

차리듯

 

 

 

♧ 인디언 옐로

 

망고 깎다가 문득, 해바라기를 떠올렸죠

 

무더기로 핀 유채꽃 그 옆을 지날 때도

 

노랑은 종이배 접어 서쪽 하늘로 띄우고

 

뭇별들을 앉혀도 빛나지 않던 화가에게

 

망고 잎과 물만 먹어 딱딱해진 비명들은

 

병든 소 눈물을 깎아 빛나는 밤을 선물했죠

 

사이프러스나무 너머 노란 소의 눈망울들

 

밀밭도 카페 바닥도 우유를 따르는 빛들도

 

캔버스 추모하는 밤 황금빛 욕망은 비릿했죠

 

 

 

♧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

 

포크레인 삽날이 긁어 대는 땅의 오후

 

소스라친 감자밭에 흰 꽃 흰 꽃 피어나

 

빼꼼히 고개 내밀고 감자밭을 지킨다

 

 

 

♧ 밀양이라 부르면

 

아는 사람 하나 없는데 밀양이라 부르면

쇠사슬 칭칭 감은 할매들 마지막 일침

 

“산에도 주인이 있다

나를 밟고 가거라”

 

밤늦게 도착한 단장면 사연리는

산이 산을 업어 주고 달빛 아직 고운데

 

철커덕 감전된 하늘

송전탑은 분명 유죄다

 

가슴으로 우는 바람 손바닥에 닿으면

울력으로 뒤척이다 쏟아지는 문장들

 

어떻게 지켜 온 땅인데

비밀스런 햇살아

 

밀양, 하고 부르면 산으로 오르던 사람들

거대한 철탑에 맞서 맨몸으로 버틴 사람들

 

절절히 부르던 노래

귓가에 쟁쟁하다

 

 

                *김진숙 시집 『잠깐이라는 선택』 (걷는사람,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