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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양동림 시집 '거울상 이성질체'의 시(9)

by 김창집1 2026. 6. 6.

 

♧ 빈자일등貧者一燈 4

   -산불

 

추운 봄이었다

산이 뜨겁게 불타고

집마저 불붙어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뛰어나온 봄이었다

마음은 더욱 추운

봄이었다

눈 내리는 봄이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밭을 잃고 일터를 잃은 봄

나누어줄 주머니가 없어

더욱 슬픈 봄이었다

 

 

♧ 빈자일등貧者一燈 5

   -화해의 탑

 

바람 불면 바람 맞고

비 오면 비 맞으며

강정에서 성산에서

평화를 위해 외치다 백발이 되고

힘센 이들이 힘없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하지 말라고

어깨 걸어 같이 목책이 되고

폭력에는 목석이 되어 항거하는 주민들과

같이 고락을 나누는 신부님의 모습이

잠든 이들을 지키는 동자석처럼 우두커니 서서

바람과 이야기하고 있는 화해의 탑으로 오버랩된

황사평이 노을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 빈자일등貧者一燈 6

 

초파일

아이를 데리고 절을 찾는다

부처님 오신 날

큰길부터 법당 안까지 가득한 연등에

저마다의 사연이 걸렸다

자기의 등을 찾아

자기만의 사연을 쓰는 아이를 본다

많은 사람들이 읽으며 같이 빌어주면

소원이 이루어지리라 믿으며

아이처럼 나도 소원을 쓴다

우리 아이 잘 돌봐주세요

 

 

♧ 빈자일등貧者一燈 7

   -업장소멸業障消滅

 

슬픔은 아이를 철들게 한다

어린 동생 다독이며 교복처럼 상복을

차려 입고 애이고 아이고 곡을 하는 아이

교실에서 차보지 못했던 완장을 두른 아이

부들부들 떨려 향조차 제대로 태우지 못하는 나를

조용히 기다릴 줄 알고

상심이 크시겠다는 위로의 말도

담담하게 마음에 갈무리할 줄도 안다

이미 다 메말라 갈라지는 가뭄 든 논처럼

쩍쩍 핏줄이 갈라지고 충혈된 눈이지만

그윽히 바라볼 여유도 갖고 있었다

먼 길 가시는 어머니 힘들지 않도록

밥 국 많이 먹어 주시고

술도 한 잔 올려 달라고 한다

빈소 알림 현황판이 유난히 넓어 보이고

간단한 상주 목록이 한눈에 들어왔다

조화가 기득하던 복도도 그날따라 넓었고

전생터 같던 주차장도 을씨년스럽게 한가한

갑진년 2월 초이틀

이슬비가 이승이승

차마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날

 

이바이바제

구하구하제

다라니제 니하라제

비리니제 마하가제

진영갈제 사바하*

 

---

*칠불여래멸죄진언.

 

 

♧ 북극성

 

여기 가만히 있을게

 

놀다가 외로워지면

 

혹은 일하다 지치면

 

이리로 와

 

어디서 무엇을 하든 가끔은

 

여기를 기억해줘

 

아빠는 항상 이 자리에 있을게

 

 

                 *양동림 시집 『거울상 이성질체』 (한그루,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