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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진숙 시집 '잠깐이라는 선택'의 시(7)

by 김창집1 2026. 6. 9.

 

♧ 당신의 처방전

 

부러진 마음에서 내일이 자라는 거야

 

쓰러진 세상에서 길을 다시 트는 거야

 

베란다 다육이에게 처방받은 나의 봄

 

 

 

♧ 장두 이재수

 

 1.

 

 목숨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었습니다

 

 맨 위에 이름 올리고 머리띠 질끈 동여매고 들불처럼 일어나라! 신축년 보리 바람 분노할 줄 알아야 세상이 변합니다 굶주린 들녘으로 푸르게 일어서던 그 옛날 조선 바람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아 바람은 바람을 낳고 죽창은 죽창을 깎고 빼앗기고 찢긴 가슴에 불 지펴 이끌던,

 

 그 사내 스물다섯에 장두가 되었습니다

 

 2.

 

 제주에서 서울로 압송되던 바닷길

 

 어머니 생각하면 바다가 다 눈물입니다 배 밑창에 철썩이는 파도가 다 통곡입니다 뜬눈으로 보낸 날이 몇 날 며칠인가요 어떡허민 좋으코, 어떡허민 좋으코, 물 한사발 떠 놓고 소리 없이 내뱉던 백혈 같은 촛농이 작은 산 될 때까지 빌고 또 빌었을 어머니와 동생 순옥이 그 어린것을 생각하면 온몸 뼈마디가 저려 옵니다 허나 목숨 구걸하지 않겠습니다 절대로 무릎 꿇지 않겠습니다  남쪽 하늘 항해 절 한 번 올리지 못합니다 서울 땅 어느 언덕 죄수들만 묻힌다는 곳 내 육신 흙이 되어도 푸르게 바람 일어 돌아갈 길 압니다 이제는 울지 마세요, 어머니 나의 어머니

 

 청보리 익어 가는 날 바람처럼 다녀갈게요

 

 

 

♧ 월광 농사

 

저 달빛 등에 지고

두만강 넘었다지

 

낫 같은 달의 손으로

몰래 뿌린 볍씨가 자라

 

황무지

광활한 가슴

밥이 되고

길이 되고

 

 

 

♧ 코레아 우라

 

가도 가도 자작나무 서릿발의 흰 뼈들

 

꼿꼿한 결기 하나 지키며 살아왔구나

 

서로가 어깨를 걸고 물러서지 않았구나

 

 

 

♧ 어떤 입국 신고서

 

“나는 홍범도요 28년 차 고려의 의병이요

방문 목적을 묻는 거라면 고려의 독립이요”

 

발자국 쩌렁쩌렁한

천둥 같은 그 이름

 

 

                   *김진숙 시집 『잠깐이라는 산책』 (걷는사람,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