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당신의 처방전
부러진 마음에서 내일이 자라는 거야
쓰러진 세상에서 길을 다시 트는 거야
베란다 다육이에게 처방받은 나의 봄

♧ 장두 이재수
1.
목숨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었습니다
맨 위에 이름 올리고 머리띠 질끈 동여매고 들불처럼 일어나라! 신축년 보리 바람 분노할 줄 알아야 세상이 변합니다 굶주린 들녘으로 푸르게 일어서던 그 옛날 조선 바람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아 바람은 바람을 낳고 죽창은 죽창을 깎고 빼앗기고 찢긴 가슴에 불 지펴 이끌던,
그 사내 스물다섯에 장두가 되었습니다
2.
제주에서 서울로 압송되던 바닷길
어머니 생각하면 바다가 다 눈물입니다 배 밑창에 철썩이는 파도가 다 통곡입니다 뜬눈으로 보낸 날이 몇 날 며칠인가요 어떡허민 좋으코, 어떡허민 좋으코, 물 한사발 떠 놓고 소리 없이 내뱉던 백혈 같은 촛농이 작은 산 될 때까지 빌고 또 빌었을 어머니와 동생 순옥이 그 어린것을 생각하면 온몸 뼈마디가 저려 옵니다 허나 목숨 구걸하지 않겠습니다 절대로 무릎 꿇지 않겠습니다 남쪽 하늘 항해 절 한 번 올리지 못합니다 서울 땅 어느 언덕 죄수들만 묻힌다는 곳 내 육신 흙이 되어도 푸르게 바람 일어 돌아갈 길 압니다 이제는 울지 마세요, 어머니 나의 어머니
청보리 익어 가는 날 바람처럼 다녀갈게요

♧ 월광 농사
저 달빛 등에 지고
두만강 넘었다지
낫 같은 달의 손으로
몰래 뿌린 볍씨가 자라
황무지
광활한 가슴
밥이 되고
길이 되고

♧ 코레아 우라
가도 가도 자작나무 서릿발의 흰 뼈들
꼿꼿한 결기 하나 지키며 살아왔구나
서로가 어깨를 걸고 물러서지 않았구나

♧ 어떤 입국 신고서
“나는 홍범도요 28년 차 고려의 의병이요
방문 목적을 묻는 거라면 고려의 독립이요”
발자국 쩌렁쩌렁한
천둥 같은 그 이름
*김진숙 시집 『잠깐이라는 산책』 (걷는사람,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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