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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520

김항신 디카시집 '길을 묻다'(4) ♧ 사진작가 작가는 작가를 읽는다 그녀는 그에게 모션을 잡고 그 모션에 셔터를 누른다   ♧ 풍뎅이 날갯짓으로 날아라 목을 축이며 빨간 입술에 촉을 세운다 페로몬 향기에 빠진 페레소나처럼   ♧ 환희의 불빛 비록 박제된 카멜레온일지라도 저 환희의 빛은 나를 다독여   ♧ 보상의 시간 닭모루에서 길 따라 걷다보니 눈에 띄는 휴식공간 간단한 요기와  감성을 달래며 흔적을 남긴다 언제 올지 모를 생 앞에 앉아   ♧ 자화상 내가 나를 볼 수 있었네 유일한 나의 굴메*  ---*그림자                  *김항신 디카시집  『길을 묻다』 (도서출판 실천, 2025)에서 2025. 3. 29.
월간 '우리詩' 3월호의 시(5) ♧ 해맞이 – 김선순   짓누른 어깨 다시 들어올려 붉은 숨 토해놓는다 억눌린 시간 그 속에 갈망들 파노라마처럼 한 아름 피어오른다 환호의 물결 속으로   차갑게 어둠길 헤치고 한 조각 빛을 붙잡으려 달려온 달콤한 기다림이여   무겁게 눌린 순간 찬란하게 피어나고 절망의 틈 사이마다 따스한 햇살 스며든다 목 놓아 울부짖던 여린 그녀도 뜨겁게 내뱉던 한숨 깊은 그도 새로운 삶의 숨결을 찾아 마신다   그리하여 다시 살아갈 오늘을 연다     ♧ 육식주의자 – 김세형  싯달타도 육식했다. 오랜 고행으로 피골이 상접한 육신으로는 더 이상 대자유의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네란자라 강둑을 양떼와 함께 지나던 수자타 처녀가 정성스레 짜준 양젖 죽 공양을 받아 드시.. 2025. 3. 28.
김병택 시집 '아득한 상실'의 시(8) ♧ 안구건조증   안구건조증에는 정지가 숨어 있다 보고 싶은 것을 보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과의 타협이 필요하다 안구건조증은 눈앞의 사물을 아예 보지 못하게 하기도 하고 다르게 보이게 하기도 한다 안경을 쓰지 않는 사람에게도 안구건조가 일으키는 증상은 다채롭게, 자주 이어진다 어떤 때는 신경과는 무관한 팔다리의 움직임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호흡증은 풀린 노래처럼 가끔 흩어질 때도 있지만 안구건조증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가해자의 역할을 고수한다 녹색으로 가득한 숲을 걸어도 에메랄드색으로 흔들리는 바다를 아무리 오랫동안 바라보아도 안구건조증은 처음 그대로이다 절대 사라지지 않을 운명처럼      ♧ 비상飛翔   공중에서 벌이질 일들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 2025. 3. 27.
김수열 시집 '날혼'의 시(2) ♧ 술 안부   인천 사는 박 아무개 시인은 가끔 한밤중에 안부를 물어온다   보고 싶어서…… 택시 타고 가려고…… 좀 기다려 차비 없는데…… 이따 봐 끊어요   섬에 사는 내게 안부를 묻던 시인은 결국 택시를 타지 못했고 더는 술 안부도 묻지 않는다     ♧ 모서리   두렵다 아픈몸이끌고출근하라네 사람취급안하네 가족들한테미안해   타박상 후유증으로 병가 중이던 우체국 집배원이 짧은 유서와 가족을 남기고 세상을 버렸다   살아도 살아낼 수 없이 별이 되지 못한   그래서 하늘 모서리엔 별똥별이 많다     ♧ 백일몽   미역 베러 왔소 낫은 어디 있남?   화들짝 놀라 선잠 깨보니 꿈이라 여섯 해 전 애비 따라 하늘로 간 큰놈이 저그 저 평상에 떠.. 2025. 3. 26.
'제주시조' 2024 제33호의 시조(10) ♧ 길상사 그리고 세련된 관세음보살 - 김현실     부처님 도량으로 내어준 길상사에   맑고 향기롭게 살다간 스님의 온기  투박한 사각의자에 소박하게 남아있다   넉넉하게 해드는 언덕배기 자리하고   슬림한 맵시와 자비의 미소로   세련된 관세음보살 중생들을 구제 중     ♧ 어떵 살안 – 김희운   이레착 절로 절로 내창 건너 웃엉 가곡 저레착 일로 일로 오름 넘어 울멍 오곡 이제왕 돌아사보니 헛녁들만 ᄀᆞ득 ᄀᆞ득   졸바로든 ᄐᆞ라지든 ᄎᆞᆺ는 일은 이녁냥으로 날이 새면 훌쩍 떠나 어상어상 허천바레당 섬 폭낭 이짝저짝으로 헤맹이문세 줄ᄃᆞᆯ음     ♧ 마라도에 갇히다 – 문경선  성난 파도 절벽은 바다의 위리안치 저 혼자 섬에 남아 허허벌판 끌어안아 목 놓.. 2025. 3. 25.
'한라산문학' 제37집의 시(8) ♧ 외로움 – 부정일   외로움은 늘 혼자다   다 내려놓고 익숙하지 못한 것이 누가 옆에 있어도 외로움이다   가출해 돌아오지 않는 강아지처럼 일탈을 생각하는 것도 외로움이다   방파제를 때리고 파도가 부서질 때 눈 딱 감고 뛰어내리고픈 생각이 곧 외로움이다   뜸들인 외로움이 또 다른 외로움과 만남은 가뭄에 단비 같은 것   바라보며 마주 앉은 술병 속에 위로의 추임새가 찰랑거릴 때   목구멍으로 털어 넣는 한 잔의 술이 외로움에 대한 처방이다     ♧ 남생이 연못 – 김항신   41인 청년들 속에 20인의 넋은 흔적도 없어 왜가리 우물에 젖는다   남생이들 어디로 갔는지   넋 기리는 행렬의 늦은 저녁 갈까마귀 군중회의는 아직도 뭐라는지   영웅들에.. 2025. 3. 24.
계간 '제주작가' 겨울호의 시(9) ♧ 갈대 가시리 – 오세진    오널날 요디 구석물당에 앚앙 열뇌하주 삼천벡메또 하르바님이영 토산 가지 갈른 일뤠하르마님이영 ᄒᆞᆫ디 메왕   족은 복에 복 엇인 ᄌᆞ손덜 ᄌᆞᆯ른 명에 명 엇인 ᄌᆞ손덜  복이민 복이영 명이민 명이영 ᄂᆞ려줍센 ᄒᆞ명   날을 갈르젠 ᄒᆞ난 무자년만도 아니ᄒᆞ곡 기축년만도 아니ᄒᆞ난   국은 갈르젠 ᄒᆞ여도 가시리만도 아니ᄒᆞ곡 제주만도 아니ᄒᆞ곡   안좌리에 가신 ᄌᆞ손덜 가시리 처처에 가신 ᄌᆞ손덜 동천에 가곡 서천에 가신 ᄌᆞ손덜 저어 한모살에 압바당에 가신 ᄌᆞ손덜 동척에 육지에 대전 대구 광주 부산에 가신 수(數) ᄒᆞᆫ ᄌᆞ손덜   을허들곡 땅 알에 눕엉 갈대로 하늘에 글을 쓰옵눼다   이 갈대밧듸 저 갈대밧듸 ᄀᆞ들.. 2025. 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