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322

월간 '우리詩' 9월호의 시(2) ♧ 아버지의 부탁 - 한상호    몇 번이나 마른기침 하시더니 창 밖 저 쪽에다 눈길 주며 툭, 던지듯 하신 부탁   구십이 다 되어서야 하신 그리도 힘든 부탁   “발톱 좀 깎아 주겠느냐”     ♧ 기도 – 허기원    바람결에 휘날리는 갈대처럼 부딪치며 살지라도 위선보다 진실을 위해 다듬어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주세요   가랑비에 떨어지는 한 가닥 꽃잎일지라도 이 몸이 사랑하는 마음 안에 따뜻한 가슴으로 포옹하게 해 주세요   아름다운 님이시여 ! 그렇게 되게 해 주세요   선善 앞에 강해지는 내가 되게 해 주세요 밤마다 견디기 힘든 고독 속에 묻혀 살지라도 사랑 앞에 무릎 꿇고 낮아지는 항상 겸허한 마음으로 그렇게 살게 해 주세요   아름다운 님이시여.. 2024. 9. 12.
장영춘 시집 '달그락, 봄'의 시(8) ♧ 노각    “한때는 말이야” 금빛 두른 노장들   푸른 날 물러지며 잘 익은 말씀만 남아   한 생의 쓰고도 단맛 소주잔이 넘친다     ♧ 아직도 저기,    순아, 자야, 부르던 그 이름들 어디 가고   아직도 저기, 과물 빨래터 맨 뒤쪽엔 밀물과 썰물 사이로 노란 똥 동동 뜬다   서툴게 비튼 기저귀 담벼락에 펄럭이고   물 봉봉 들어와 경계조차 지워진 멱감다 물허벅 지고 달리던 발자국들   뉘엿뉘엿 수평선에 정적만 저리 남아   그리운 이름들 하나둘 건져 올리면 빨래터 방망이 소리 옥타브를 타고 있다     ♧ 팔순의 마당    팔순의 넓은 마당 깻단들 가득하다 까맣게 그은 얼굴, 땀방울을 훔치며 팔월의 노란 냄비에 참깨 톡톡 튀고 있다  .. 2024. 9. 11.
오승철 유고시집 '봄날만 잘도 간다'의 시(11) ♧ 밤비 속에서 I   네 넋이 어디쯤 스러져 오는 것일까   등을 맞대고다가설수록 멀어지는 캄캄한 너의 하늘검은 개가가로등 빛을 핥듯아픈 우리의 속말은 슬픔의 강을 건넌다   금세라도 네 모습 뛰쳐나올 듯아스라지는목마름   열아홉 고개를 넘던 날밤그리도 곱게 웃더니아아, 비 내리는 이 밤나의 하늘엔 마른번개가 치고 있다    ♧ 밤비 속에서 II    어디로 갈까 가등(街燈) 빛 젖어 내리는 거리   수천만 개의 낯선 얼굴들이 나의 옆을 스쳐 지나는가   어디로 갈까 바다 기슭을 돌아와 발밑에 밀리는 나목(裸木)의 그림자   바람은 네 머리카락을 흔들고 내 머리카락도 흔든다   하늘 한 자락 살아있는 번개 어둠을 쪼개듯 내 넋을 쪼개고   빗물이 고여 들어 아아, 이.. 2024. 9. 10.
임채성 시조집 '메께라'의 시조(완) ♧ 새별오름 방애불    풀이 탄다 어둠이 탄다 가연성 울음이 탄다   비명과 아우성이 접신의 춤을 출 때   광기와 분노를 사르는 장엄한 진혼 축제   태울 것 다 태우고 민둥해진 오름 위로   뜨거운 불티들이 별빛처럼 내리는 들녘   불길에 신명을 지핀 봄이 새로 돋는다     ♧ 자구내 해넘이    머리 푼 구름들이 먼 하늘로 타래친다 갈지자 높바람에 메밀꽃 핀 포구 너머   흉어기 저녁 바다가 속 빈 매운탕을 끓인다   아흐레 멀미에 지친 차귀도도 드러눕고 거품이 거품 물고 부침하는 냄비 해안   가슴에 구멍이 뚫린 돌덩이만 그득하다   장기부채 고봉밥에 더 허기진 수월봉엔 간신히 수저를 든 창백한 낮달이 홀로   고수레, 고수레하며 .. 2024. 9. 9.
월간 '우리詩' 9월호의 시(1)와 황근 ♧ 시농詩農 - 임보    시의 농사를 시작한 지 70여 년 드디어 깨달은 것은 이젠 그만 폐농을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별 쓸데없는 말들 많이 거두어 들였다 곳간에 가득 쌓여 있는 저 헛말들의 곡식   한 목숨의 구황 능력도 없는 저것들을 어떻게 한다?   버릴 데도 없어 그냥 껴안고 낑낑대고 자빠졌다     ♧ 장맛비 예보 – 정봉기    청문회, 특감 극우, 극좌, 대립과 갈등으로 어지러운 유월의 마지막 주 금요일. 해병대원 순직, 세월호 참사에서 이태원 참사까지, 부모의 속은 타들고 속이 시원한 진실은 없다. 셈법에 달인들, 끝내는 묻힌다.   온다던 장마전선은 남해에 머문다. 장맛비는 없고 땡볕만 가득하다. 예보는 예보, 수사는 수사... 2024. 9. 8.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11) ♧ 낭*    소낭 폭낭 단풍낭 낭군 이름 같아요 한겨울 모진 바람 끝끝내 버텨내는 그 이름 부를 때마다 끝소리가 낭랑한   앵두낭 매화낭 틀낭 낭자 이름 같아요 불러도 대답 없어 한동안 기다려도 산벽을 넘지 못하고 울림만 되돌아오는   누가 먼저 낭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 연애질 낭자 낭군 콧소리에   마파람 지나가다가 ‘낭’자 하나 심어뒀나   --- * 낭 ‘나무’의 제주어.     ♧ 물굿*    밥이 그리 어렵단들 이 풍파에 나섰냐고 괭과리는 괭괭괭 북소리는 둥둥둥 용수리 굴곡진 갯가 동네 심방 춤춘다   술에 취한 지아비 새 콩밭 갈러 가고 갈고리 든 지어미 하군 물질 갔댔지 날미역 갯돌에 올라 초저녁을 읽는 날   ------ * 물.. 2024. 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