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369 장영춘 시집 '달그락, 봄'의 시(12) ♧ ᄀᆞ시락당 어깨만 들썩여도 수평선에 두 손 모으며 백지 한 장, 쌀 한 사발 용연다리 건너서 누구의 발길이었나 향냄새 진동하네 때로는 잔잔한 바다 왜 이리 낯설까 밀리고 떠밀리다 부서지는 파도처럼 아득히 저 멀리에서 웅크리고 있느니 바다를 운명으로 펄럭이는 촛불 앞에 촛농으로 녹은 마음 촛농으로 아우르며 오늘도 안녕을 비는 바다의 수호자여 ♧ 하늘 연못 연못 위로 퍼져가는 주름진 하루가 아침햇살 등에 업고 윤슬로 반짝이는 설문대 신의 품으로 한 발짝 다가선다 찰랑찰랑 숨소리 죽이며 주문을 걸듯 딱 저만큼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는 언제나 옹달샘처럼 넘치지 않게 하소서 ‘이곳에 흠 있는 자, 네 죄를 사할지니’ 요단강 성령의 비.. 2024. 10. 18. 최기종 시집 '만나자'의 시(1) ♧ 시인의 말 나무에게 미안하지나 않을까? 그래도 시집을 낸다. 인구의 반열에서 내쳐지는 시들이지만 그래도 시집으로 엮는다. 그런데 더 이상 햇빛 보지 못하는 것들을 모아서 집을 지었더니 그럴 듯하다. 한반도 비하인드 근현대사가 펼쳐지는 듯하다. 동학년에서 기미년으로 그리고 광주항쟁에 이르기까지 죽고 죽어도 다시 살아나던 인걸들이 하늘의 별들처럼 반짝거렸다. 우리 민족끼리 평화를 말하고 통일을 말하는 거대 담론이 흘러들었다.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참화도 성토된다. 물론 당위적이고 목적의식적인 시들이다. 하지만 시가 언어의 묘미나 비유적 수사만을 말하지 않는다. 시적 아님을 드러내면서 거칠고 투박한 것들도 분청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시대를 말하고 인물상을 말할 때 살점 하나 없.. 2024. 10. 17. 계간 '제주작가' 가을호의 시(1) [4.16 추모작품] ♧아무도 없었다 - 김경훈 -진도 팽목항에서 거기, 방파제 중간쯤 주인 잃은 신발들만 걸음을 멈추고 아무 것도 없었다 눈앞에서 뻔히 모든 걸 삼킨 바다에도 이어중간 구름길 바람길에도 피울음 삼킨 먹먹히 에인 가슴들만 빈 하늘에 나부끼고 거기, 살아 있는 이 아무도 없었다 다만, 눈감고 뻔뻔히 조난된 정부 해체 된 국가만 비닐 쓰레기로 날리고 있었다 --- *세월호 3주기 추모 시집 『꽃으로 돌아오라』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2017) 수록 ♧ 잔등(殘燈) - 강덕환 예비검속과 세월호 바다에서 숨져간 두 사건의 영혼을 한꺼번에 인양하기엔 너무 버거웠을까 해원상생굿을 집전하던 서순실 심방 여러 차례 숨비며.. 2024. 10. 16. 월간 '우리詩' 10월호의 시(1) ♧ 입동 - 장문석 지금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 한철 무성했던 자음일랑 저만치 떨궈 내고 형형한 모음의 뼈대 몇 개만을 추슬러 한 그루 감태나무로 서야 할 때 문득 높바람은 눈시울을 씻어 가고 하늘 한복판 일필휘지로 날리는 기러기 떼의 서늘한 서한체 그 삐침과 파임에 골몰하여 밤늦도록 촛불을 밝혀야 할 때 똑, 똑, 똑 조용히 나이테를 두드리며 한 줄 한줄 일기를 써야 할 때 그렇게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 묵언의 울림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 지금은 ♧ 여의민국 - 홍해리 어느 천년에 황하가 맑아지겠느나 백년하청이지 해가 뜨지 않는 세상 어느 세월, 어느 구석에 꽃 피는 봄날이 올 것인가. 여우도 쥐새끼도 정치적인 여의민국 일락서산.. 2024. 10. 15. 김윤숙 시집 '저 파랑을 너에게 줄 것이다'의 시(9) ♧ 수크렁 얼룩진 그림 꺼내덧칠을 다시 한다 한여름 소낙비에흔적 없이 지워졌다 지워져 마른자리에 떼로 피는 수크렁그냥 갈까 머뭇대던백약이 거친 손등 설핏 스쳐 데데한낱알 같은 눈물이 저 속내 미처 몰랐다환히 비워둔 자리 ♧ 빨래가 널린 집 1. 널린 빨래 보면세상 참 가벼워진다 삼각 지붕 그 아래에곤 실레의 사람들 나란히 서로가 기대축 처진 어깨를 견딘다 2. 그림자 길게 누운옛집 너른 마당 시래기 시들 듯빨래도 시들어 간다 긴 골목 돌아 나오면팽팽해진 수평선 ♧ 붉은 벽, 능소화 울타리 그쯤이야 넘는 게 다 아니라며 창가의 대범한 너 하늘 곁에 서겠다고 지붕 위 기어이 올라, 눈물 쏙 뺀 초가을 ♧ 그때 빨간 사과는 엄살처럼 고집처럼 고개 .. 2024. 10. 14. 조직형 시집 '천 개의 질문'의 시(7) ♧ 붉은 마음 눈이 내리는데 여태 잎을 떨구지 못하고 그대로 말라 있는 키 낮은 단풍나무를 본다 훌쩍 떠나버리는 것도 능사는 아니지만 꽃은 질 때 져야 하고 가야 할 것들은 가야 아름답다 꼭 맞는 제 계절을 알고 가는 어떤 이별은 찬란하기까지 한데 손이 부르트게 골똘히 물만 퍼 올리다가 그만 지쳐 주저앉아버리면 혀에 새길 말조차 없어 누추해진다 마음 약해 떼어놓지 못해 주저한다고 억지로 매달리는 것이 사랑은 아닐 텐데 한때 붉었던 마음 있었다면 최선을 다해 꽃처럼 뛰어내렸어야 했다 영원이란 색이 바래지고 피부가 말라 버짐이 필 때까지 둘 사이 차가운 공기가 흐르고 믿음이 희박해질 때까지는 아닐 텐데 ♧ 버려진 장롱 .. 2024. 10. 13. 이전 1 2 3 4 5 6 7 ··· 6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