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370 '애월문학' 2023년 14호의 시(1) ♧ 사랑의 시간 – 강선종 오늘을 살면서 그대를 사랑함은 함께 부둥켜안고 가야 할 세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보다 그대를 사랑함은 함께함이 행복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그대를 사랑함은 내 안에 그대가 살아있어 심장이 고동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그대가 있듯이 나 또한 그대의 마음속에 자리하여 길고 긴 눈맞춤은 영원을 함께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 영원한 이별 - 강연익 어느 날 병문안을 가서 고통스러워하는 그에게 위로의 말이 될까 싶어 우리가 맞이하는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새 옷을 갈아입는 제식이 아니겠느냐, 고 위로를 해 보았지만 친구는 말이 없었고 이제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져 가고 영혼은 훨훨 새처럼 날아 구름 사이로 사라져 갔다. 한 많은 세상 떠나는 길에 잘 가라고 이별.. 2023. 12. 22. 월간 '우리詩' 12월호의 시(3)와 설경 ♧ 귀를 열어 길을 열다 – 이택경 누군가 내 몸에 활을 댄다 한낮의 소음에 숨죽여 도사리던 음모 고요해지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밤이면 현란하게 시작되는 연주회 휘어지고 틀어진 미로에 갇혀 공명되지 못한 소리가 울부짖는다 소리가 없는 소리 나 아닌 누구도 듣지 못하는 소리 가장 가느다란 현을 골라 끊임없이 활질을 하는 저 연주자는 누구인가 높낮이도 없이 그 저 한 음 바이칼 호수의 빙평선처럼 얼어붙은 시베리아를 달리는 침엽수림처럼 질리도록 꼿꼿한 음계 양손으로 귀를 막아본다 최고조에 이르는 활의 난무 하이 C# 톤으로 울부짖는 난장에서도 옆에 누운 당신은 고른 숨소리로 밤을 건넌다 쥐구멍 쑤신다 쥐구멍 쑤신다 하며 밤이면 귀이개를 찾던 어머니 귀를 열어 소리의 길을 내어 준 것이었을까 귀 어두워 꿈조차 먹.. 2023. 12. 21. 나기철 시집 '담록빛 물방울'의 시(8) ♧ 먼 곳 -이시영 풍 국장으로 퇴임한 시인이 성산일출봉이 훤히 보이는 집 앞 공터에서 포장을 몇 개 치고 단상도 만들어 시집 출판기념회를 하는데, 끝나 몇 해 전 김 약사네 집 밖에 와 사는 팔순 넘은 이제하 시인이 나중 추첨자의 하나로 나가 몇 번 손을 넣었다. 허름한 모자에 편한 옷을 걸친 그가 아무 말 없이 돌아와 아픈 듯 아픈 듯 사람들 틈에 앉아 다시 먼 곳을 바라보았다. ♧ 평화양로원 3 사람 하나 안 보이던 건물 밖 정문 쪽에 할머니 둘 나와 있다 “어르신들, 빨리 들어가세요! 다칠 수 있어요” “세 살 난 어린앤가, 괜찮아, 괜찮아” 다시 고요해진 ♧ 노래할 곳 엘싱타사르헤 초원 겔에서 짐을 풀고 저녁을 먹고 빠져 나와 초원의 멀리까지 가서 힘껏 노래를 불렀다 말들이 드문드문 한참 후 한.. 2023. 12. 20. 김영순 시집 '밥 먹고 더 울기로 했다'의 시(8) ♧ 거울의 화법 한 달이 멀다하고 서울을 가는 친구 일이나 여행 아니라 휠체어로 오간다 어느 날 한참 동안을 머뭇대다 끊긴 전화 보름쯤 지났을까 뜬금없는 카톡 사진 지하철 스크린도어 게시된 내 시(詩) 몇 줄에 저기압 벙거지모자가 배경으로 앉아 있다 ‘뽀샵하려 했는데… 못해서 그냥 보낸다’ 굳이 감추려던 민머리 그 마음 알겠다 세상의 그 어떤 고백도 대신하는 거울의 화법 ♧ 은행나무 밥집 – 김영순 허기를 모른다면 세상이 재미없다 제주 칼호텔 근처 반세기 비바람 속에 함석집 지붕을 뚫고 기둥이 된 은행나무 그 나무 품은 밥집에선 연애사도 출렁인다 의귀에서 시내로 유학 온 막내삼촌도 저 혼자 말 못할 고백, 단풍처럼 탔었다 여기도 코로나는 비켜가질 않는지 재작년엔 ‘국밥집’ 작년에는 ‘정식집’. 올해엔 또.. 2023. 12. 19. 월간 '우리詩' 12월호의 시(2) ♧ 가을 장미 – 이상호 말하자면 붉고 노란 아름다운 것들이 가끔은 가랑비 설킨 설음이어도 좋으리 말들이 자글거리는 입안에서라도 좋으리 문신처럼 새겨져서 창밖에서 흔들리는 이 밤만은 단둘이 아니라도 좋으리 질기게 기대어 서서 눈물 나게 울어도 좋아 선잠 깬 새벽거리에 가시 하나 품고 서서 상처 하나 길게 내 놓고 미음 끝 뒤에라도 기억에 사라지지 않게 가지 하나 내밀어 다오 ♧ 무두불無頭佛 - 김세형 길 없는 길을 찾아 경주 남산 용장골 깊은 산곡山谷을 오르다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낮부터 이튿날 새벽녘까지 어미 잃은 고라니 새끼처럼 캄캄한 잡목림 속을 헤매다 잡풀 더미 속에서 좌정에 든 머리 없는 돌부처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길을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머리 없는 돌부처가 대답했습니다 머리를 내어놓으.. 2023. 12. 17. 김정숙 시집 '섬의 레음은 수평선 아래 있다'의 시(6) ♧ 먹는 동사 왜 이리 예쁜 거냐 서오누이 하는 짓이 엄지 검지 중지까지 합세해서 ᄌᆞ바 먹고 다섯 손가락 다 펴서 한 움큼 줴어 먹고 밥 밥 해도 밥은 국물 있어야 ᄌᆞᆷ앙 먹고 입맛 없을 땐 마농지 자리젓 ᄌᆞ창 먹고 짠짠한 감장된장 양념해서 ᄐᆞᆨᄐᆞᆨ ᄌᆞ가 먹고 숟가락 들고 다니며 이것저것 거려 먹고 짜고 달고 쓰고 신 건 물 담가 우려 먹고 먹음직한 건 입대서 덥석 그차 먹고 맛 좋은 국물은 사발째 호륵 드르싸고 풋콩 삶아주면 콩깍지 베르싸 먹고 어머니 눈엔 꿀 뚝뚝 다디 달던 그 시간 ♧ 말은 낳아 제주로 보내랬다고 왓은 신의 공간이라며 탐낸다는 태국 말 중에 빌레왓 성굴왓 촐왓 담드리왓 무등이왓 만 팔천 신들이 고향 지명들이 남아서 무심코 튀어나와 쪽팔린다는 일본 말 중에 노가다는 똔똔이야.. 2023. 12. 16. 이전 1 ··· 50 51 52 53 54 55 56 ··· 6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