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422 '산림문학' 2023 겨울호의 시(3) ♧ 빙산 마을에서 – 김학순 -에베레스트 가는 길 잡념 털고 두둥실 하늘 오르는 빙산마을 꿈결에 쨍그랑 하얀 창끝 파란 하늘 찔렀을까 하늘 벽 금 가는 소리 맑고 깊어 창문 열면 뾰족한 마을 수호신 문 앞에 다가선다 빙산 마을은 구름 타고 두둥실 하늘 오른다 ♧ 경로敬老 식당 - 백인수 식사를 끝낸 남편이 아내에게 물을 가져다주고 네프킨을 손에 쥐어 줍니다 음식물이 흘린 자국도 깨끗이 훔칩니다 부인은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듯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식사가 끝나자 식판을 들고 갑니다 부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따라갑니다 이것을 우리는 애틋한 사랑이라 합니까 숙명적 사랑이라 합니까 이곳은 애틋한 사랑과 숙명적 사랑이 함께 가는 세상입니다 ♧ 목련의 겨울나기 – 엄선미 겨울이 싫었다 짙은 어둠이 싫었고 쓸쓸함.. 2024. 1. 29. '혜향문학' 2023년 하반기호의 시(3) ♧ 가을 편지 – 강태훈 계절의 정취를 느끼는 풀벌레 우는 소리 저만치서 들려오는데 오솔길에서 하늘거리는 수줍은 꽃을 보며 그리운 임을 생각하도다 해바라기 꽃도 일편단심 태양을 향해 열정으로 꽃을 피우고 폭염이 멈추는가 싶더니 성큼 다가선 푸른 하늘 슈퍼문도 휘영청 밝아라. ♧ 봉암사에서 – 고은진 스무 살에 혼자된 여자 볼 色 같은 능소화가 넌출넌출 황토 담장을 넘는 팔십이 넘은 老僧 툇마루 기둥에 기대 동자승처럼 저도 몰래 졸음에 겨운 다 내려놓아 다 가진 자의 뜨겁고도 서늘한 산사의 여름 한낮 좋다 좋다 다 좋다! 念하는 개울은 천년을 재잘대고 佛같은 바위는 만년을 굽어보네. ♧ 가야 하는 길 – 곽경립 가지 않을 수 없으니 떠나야 한다. 우리가 가야 할 곳으로 강물이 흘러가듯 이곳은 영원히 머물기.. 2024. 1. 28. '제주작가' 2023 겨울호의 시(4) ♧ Pretend – 김혜연 약지손가락이 종아리를 예언하고 날개뼈가 척추를 예언하는 밤에도 무대는 뜨거워야 합니다 몸은 활이 되고 펜이 되면서도 두 개의 눈은 나의 자치구라서 종종 눈물이 고입니다 춤에는 빛깔이 말이 관계성이 없고 춤에는 사라진 시간이 설득이 비밀이 묻어납니다 나는 아빠 어깨 위에 앉아 있고 엄마는 아빠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고 스웨터는 알록달록하고 아빠의 정강이까지 올라온 그 언덕의 눈은 폭신하게 하얬지요 흘리다 만 피는 미제로 남아 훌쩍훌쩍 새벽을 흘립니다 ♧ 제식훈련 –양동림 오른발 내디딜 땐 왼팔이 앞으로 나가야 한단다 왼발! 왼발! 구령에 따라 왼발을 내디딜 땐 오른팔이 나가야 하는 거야 왼발! 구령에도 오른발이 나가고 덩달아 오른팔 내 뻗으면 고문관이 되는 거야 균형이 흐트러져 .. 2024. 1. 27. 장이지 시집 '편지의 시대'의 시(2) ♧ 슬픈 습관 당신은 내게 전화로 헤어지자고 말하고 그 후로 내게는 다른 방식의 이별을 상상하는 슬픈 습관이 생긴다 당신은 사막 가운데서 헤어지자고 말하고 내 발밑에서는 이빨 돋은 모래 고기가 선회하기 시작한다 당신은 어느새 빙산 위에서 헤어지자고 쓴 얼음 편지를 내게 건넨다(메머드의 슬픈 사체) 사막에서도 극지에서도 당신은 처음에 우리가 만났던 때보다 어른스럽고 아름답다 당신은 내게 아무튼 편지 같은 것을 쓴다 그것은 어김없이 내 트레이싱지 같은 피부를 찌른다 폐부에 닿는다 목적지가 있다는 것은 언제나 운명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사이에는 기항지가 없어요, 하고 중얼거려 본다 그러나, 그러나 편지의 시대는 이미 끝났고(하늘의 새들이 모두 편지로 변해 추락한다), 우리의 시대 역시 그렇다 얼음 편지가 날아.. 2024. 1. 26. 김순남 시집 '내 생애 아름다운 인연'의 시(2) ♧ 좀딱취 땅 짚고 헤엄치는 일도 네게는 평생이어서 스산한 계절의 뒤꿈치 옆에 몽실몽실 오래 기다려온 꽃봉오리들이 더러 어깃장을 부려서 몇 송이 겨우 피울까 말까지만 엎드려 코를 맞대야 눈 맞추게 되는 셋이면서 하나인 하나이면서 셋인 꽃 세상에서 가장 온전한 대지의 만가라네 ♧ 질경이 늘씬한 키에 잘나고 예쁜 꽃 피워내는 힘센 풀밭에서는 이파리 하나 건사하지 못하고 영영 죽고 마느니 차라리 볕 좋은 길에나 가자 오가는 발길마다 온몸이 으스러지게 밟히더라도 나는 다시 일어설 뿌리의 힘을 믿는다 ♧ 나리난초 뿔리멍 말멍 썩은 낭껭이나 ᄐᆞ라진 낭섭에 그자 얹혀 겉살암주 욱둑지영 종애도 나위엇이 ᄀᆞᄂᆞᆯ고 ᄀᆞᄂᆞᆯ아 ᄂᆞᆷ들이 곤는 말에 양지는 곱닥허덴 허염주마는 양지 살이 해도 얄루와부난 양갈래 받침대는.. 2024. 1. 25. 월간 '우리詩' 1월호의 시(3) ♧ 벽이 나를 만지기 시작했다 - 최경은 이삿짐을 싸다가 텅 빈 사무실 벽을 바라본다 긁히고 패인 울퉁불퉁해진 벽, 갈라진 벽에 칠이 벗겨져 알 수 없는 낙서들이 새겨있었다 벽을 경계로 집기들이 가려진 밀폐된 공간 속에 비밀스런 말들이 숨어있었다. 사나운 짐승이 되어 서로를 가로막던 벽, 서로 난감한 표정으로 돌아서야 했다 웅웅거리던 말들이 벽을 타고 스멀스멀 구석으로 번진다 다독이며 위로하듯 위선적인 말들이 벽을 키우고 있었다 벽을 사이에 두고 책상에 앉아 눈알만 굴리던 사람들, 서로 관심이 없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벽 몰래 은밀히 벽이 되어가는 얼굴들 침침해진 눈, 눈을 감고 벽을 만졌다 내가 만져졌다 무엇이 간지러운지 자신을 가두었던 벽에서 튀어나온 나를 본다 벽이 나를 만지.. 2024. 1. 24. 이전 1 ··· 46 47 48 49 50 51 52 ··· 7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