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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임채성 시조집 '메께라'의 시조(2)

by 김창집1 2024. 4. 8.

 

 

다시, 사월에

 

 

동백 지는 봄을 맞는

섬은 늘 겨울이다

 

멍이 든 잎새마다 고개 숙인 사월 앞에

 

연북정 옹성 축대가

북쪽으로 기운다

 

대답 없는 안부 같은 목청만 가다듬다

가납사니 뜬소문에 주저앉은 산과 오름

 

뭍 향한 무언無言의 절규

파도마저 목이 잠기고

 

오천만이 절을 하면

하얀 목련 촛불을 켤까

 

태풍에도 지지 않을 꽃 한 송이 기다리듯

 

고사리 어린 상주가

조막손을 모은다

 

 

 

 

4, 동백동산

 

 

하르방은 피라 했고, 할망은 불이라 했다

 

추깃물에 목을 적신 까마귀 혓바닥처럼

 

울 아방 산담을 따라

비명처럼 지는 꽃들

 

붉은 꽃잎 어디에나 검은 멍이 들어 있다

 

그 겨울 시반屍斑 같은 들고양이 호곡소리

 

곶자왈 야만의 숲이

바람도 없이 출렁인다

 

화산도의 눈물인 듯 마르지 않는 먼물깍*

 

벙글다 진 꽃봉오리 두 손으로 받쳐 들면

 

봄볕에 말문이 트인

동박새가 홰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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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동백동산의 가장 큰 습지.

 

 

 

 

백록의 눈물

 

 

백록!

백록!

부르다 보면 가슴께가 젖어든다

날 세운 바람 앞에 안으로만 삼킨 눈물

뿔 꺾인 사슴 한 마리 산담에 갇혀 산다

 

백 번은 올라서야 흰 사슴을 본다던가

잡풀은 스러지고 민머리로 남은 봄을

천 번에 천 번을 와도 볼 수 없는 사람아

 

비울 것 다 비워서 하늘마저 궁근 사월

산철쭉 송이송이 붉은 혀 빼어 물면

활화산 분화의 기억 잠든 산을 깨운다

 

움푹 팬 정수리를 내리치는 천둥소리

까마귀 목쉰 울음 산을 타고 흘러내릴 때

눈 퉁퉁 고사리마가 눈물 왈칵 쏟고 있다

 

 

                      *임채성 시조집 메께라(열린시학,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