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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계간 '제주작가' 봄호의 시조(1)

by 김창집1 2024. 5. 21.

 

 

아가미 호흡으로 - 김연미

 

 

부재중 전화가 떠도 너는 연락이 없었지

기억의 한 모퉁이 섬이 점점 작아지고

꽃 피고 눈이 내려도 멈춘 시간이었지

 

스팸메일 안부 같은 이름으로 남았을까

가장 높이 가장 멀리 가야 할 길은 멀고

이쯤서 되돌아갈까 너의 바다 속으로

 

안개 낀 교래 곶자왈 핑계처럼 길을 잃고

장맛비 그친 숲속 코끝까지 물이 차면

잊었던 아가미 호흡이 다시 편안해질까

 

골고사리 표주박이끼 수정이 된 바위수국

반가움과 낯섦이 갈등처럼 엉키는 사이

빙그레 미소를 짓는 네가 거기 있었다

 

 


 

니들의 판결문 김영란

 

 

  단 한 명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 했지

 

  제주사람 3007년형 선고 받고 형무소에서 손꼽던 만기출소 꿈은 가고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에 누웠지 그 무덤 골짜기마다 흘러내린 울음소리, 78년 긴 시간을 돌아온 홍범도장군 장군묘역 돌아보다 눈 나오고 입 벌어지네 니가 왜?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장군 제1묘역 함병선 연대장 니가 한 일 우리는 다 알고 있는데 니가 왜? 니가 왜 거기서 나와? 그 환한 양지녘 풍수지리 몰라도 최고 명당 그 자리에 삔주룽히 낯짝 들고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이 잡듯 뒤진 곳에 최경록 신현준 서종철 유재흥 김두찬 니들이 왜? 니들이 왜 거기서 나와? 삔주룽히 낯짝 들고 피 냄새 진동하는 니들이 왜? 니들이 왜 거기서 나와?

 

  역사의 심판 앞에서 니희들은 종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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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영탁의 노래 제목 차용.

 

 


 

한 끗 차이 - 김영숙

 

 

서릿발 하루 업고

저녁장 보는 마트

 

물비누에 온수 콜라보

흙손 씻는 그 순간

 

손가락 사이사이로

봄이 내게 스몄어

 

수선 서향 명자가

차례로 지고 나면

 

복사꽃 화안한 날

꽃그늘에 널 부를게

 

꽃샘이 우리를 할퀴더라도

오늘의 코드명 무슨 사정 있겠지

 

 


 

타지마할 소묘 오영호

 

 

그녀는 궁전의 왕관 시간에 마술을 건*

연못에 거꾸로 선 채 사자한** 러브스토릴

분수는 천상을 향해 뿜어낸 지 400

 

영혼이 숨 쉰다는 이슬람 넓은 정원엔

바람 탄 꽃향기와 흐르는 세레나데

신성한 야무나강 물소리 내 가슴이 젖네요

 

양파 돔 아라베스크 빛의 각도 따라

해 뜨면 푸른 벽이 핑크로 머물다가

저물녘 우윳빛으로 연출하는 타지마할

 

지독한 아내 사랑 황제는 우아함으로

예술의 붓을 들어 세운 무덤 앞에

사랑은 번뇌의 화두라고 오늘도 묻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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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고르의 타지마할시에서 차용.

** 무굴제국의 5대 황제.

 

 

                    *계간 제주작가봄호(통권 8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