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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5월호의 시(3)

by 김창집1 2024. 5. 22.

 

 

요다하다 이윤진

 

 

풍요롭고 많다

국어사전을 펼칠 때마다

생소한 단어들이 부지기수다

아름다운 언어의 맥은

부드러운 협곡을 만들고

생이 익어가는 것처럼

발견의 환희에 초로의 눈빛이 반짝인다

낱말의 협곡에서 모호함이 생길지라도

이해하고 진중해아 하는 것들은 그득하다

내가 사는 세상도 그러하다

 

 


 

 

욕망을 태우다 - 이중동

 

 

근원을 알 수 없는 아궁이 하나가

내 몸속에 터를 잡고 있어요

커다란 주둥이를 가진 욕망의 아궁이

너무 뜨거워서 손을 댈 수가 없어요

날마다 아궁이를 품고 잠을 자고 출근을 하죠

 

나는 세상 모든 욕망을 위해

쉬지 않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요

당신의 피를 끓게 해 줄까요?

핏발선 두 눈 부릅뜨고 보세요

무지개 같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어요

 

그대는 나의 피를 데워 돌게 하고

그릇된 욕망에 불을 지피는 아궁이

 

욕망이 꾸역꾸역 불질하고 있어요

매운 연기가 신기루처럼 전신을 감싸고

나는 연신 눈물을 흘려요

조금만 참아요 더 뜨겁게 불을 지필게요

 

욕망의 열기가 몸속 구석구석으로 펴지고

아궁이 속 잉걸불이 타오르고 있어요

 

 


 

 

빨래 이학균

 

 

이제 베란다에서는 어떤 속삭임도 들리지 않는다

손바닥만 한 뱅갈고무나무 이파리들이

간간이 부딪치는 소리만이 바람처럼 호를 뿐

 

하루를 살고 온 가족들의 일상들

현관에 들어서면 곧바로 세탁기로 들어가

허물을 벗어 버리고 서로 몸을 부빈다

 

그리 넓지 않은 통 안에서

엉기고 부딪치는 순간에도 건조대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꿈을 꾸었지만

 

온 몸이 허물어진 빨래는

기력을 회복할 틈도 없이

건조기로 들어가 녹초된 채로 땀을 흘리는데

 

엄마는 드라마 속에서 희노애락의 파도를 타고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침묵 속에 몸을 숨기고

아들은 핸드폰 속에서 녹슬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을 거닐고

 

오늘도 할 일을 잃어버린 채 하루 종일

해의 뒤를 터벅터벅 따라다닌 베란다 건조대는

긴 손을 늘어뜨린 채 홀로 밤을 새야 한다.

 

 


 

고흐를 위하여 - 남대희

    -해바라기*

 

 

헬로 하면

옐로로 대답하지

널 따르는 것은

압생트의 매혹적인 향기 때문

 

아를의 하늘은 늘 해바라기 빛

단순하고, 짙고, 굵은 덩어리

의자가 되고

화병에 꽂힌 꽃이 되고

잘린 귀를 감싼 붕대가 되고

 

불꽃같은 꽃잎 축 늘어져

충혈 된 하루의 양식은

소진하고 소진해도 소진되지 않는

태양의 색깔뿐

 

이젠 꽃만 먹고 살자

꽃이 말하고 꽃이 주인이고 꽃이 꿈꾸고

꽃으로만 노래하게

 

떠나온 도시까지 꽃은 따라와서

방안 가득 해를 그려 넣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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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센트 반고호의 유화

 

 

        *월간 우리5월호(통권43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