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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순선 시집 '어느 토요일 오후'의 시(7)

by 김창집1 2024. 5. 24.

 

 

   -극단 가람 가로묘지주식회사연극을 보고

 

강남에서

북으로 북으로

원룸에서 고시텔로

위로 위로 올라가다 마지막

당도한곳

 

잠자는 기능만이 가능한 이곳

사람보다 돈을 중시 여기는 가로와

돈보다 사람을 중시 여기는 세로 남매의

묘지주식회사

치열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들도 살아남기 위해

약자를 횡포할 수밖에 없었던

악순환

 

임대료가 밀려 쫓겨나고

거리로 내몰리는

가난한 세입자들

죽어라고 일을 해도

의식주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죽어라고 일을 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는

결국 내 몸 하나 누울

관마저 얻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리는

세입자들

 

 


 

그림의 떡

   -독립 영화 복지식당을 보고

 

 

사고로 장애인이 된 청년 재기는

거동조차 힘든 중증인데도

장애인 등급은 경증이다

경증 장애인에게는

전동휠체어, 지팡이, 가사도우미, 장애인 콜택시 이용,

대출, 취직 등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규정 때문에

중증장애인이 아니라고

 

세상의 문턱은 높기만 하고

재기는 살아갈 길이 막막한데

언제나 뱀의 혀는 달콤하게

친절의 가면을 쓰고 다가온다

중증장애인 등급을 받게 해주겠다고

취직을 시켜 주겠다고

어수룩한 재기의 곶감을 빼먹는다

재기의 미래를 저당 잡혀 대출한 돈

누나의 젖꼭지 같은 노동을 가불한 돈

남매의 일상마저 꿀꺽 삼켜버렸다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기를 쓰며 올라오는 잡초를

가래침 뱉어 뭉개버리듯

담배꽁초 비벼 끄듯 짓밟아버린다

 

누가 봐도

나는 중증장애인인데

중증장애인임을 증명하라니

증명할 길이 없다니

우리다라 복지는 아직도

그림의 떡인가 보다

 

 

 

 

 소통의 부재

    -극단 파노가리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연극을 보고

 

 

정전된 카페에서

고성이 오고 간다

상대방도 확인하지 않은 채

서로서로 자기 이야기만

소리소리 지른다

 

승용차를 들이박은 카페 사장은

합의를 보려고

소개팅 나온 고상해 앞에서 쩔쩔매고

처음으로 소개팅 나온 시골 노총각은

엉뚱한 차주 앞에서

마음 설렌다

일방통행하듯

서로 다른 상대를 향해

자기 말만 쏟아 놓는다

 

말은 아무런 의미 없이 소음으로 날아다니고

의미는 골방에 갇혀 헤어나지 못한다

혼돈된 언어 속에서 바벨탑이 무너지듯

정전된 카페에서 말은

길을 잃고 헤맨다

 

 


 

나는 선택할 수 없어요

   -‘소피의 선택영화를 보고

 

 

이것 아니면

저것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어라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유치한 강요를 하며

짜장 아니면 짬뽕과 같은

가벼운 일상에서부터

매 순간순간 운명에 이르기까지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 앞에서

한 여인이 절규한다

나는 선택할 수 없어요!

열 달 품어 배 아파 낳은

목숨보다 귀한 내 자식을 선택해야 하는

가혹한 형벌이 내려졌다

, 아들 둘 중 한 사람만을 데리고 갈 수 있다니

누군가 한 사람은 검은 연기로 사라져야 한다

야속한 운명 앞에서

끔찍한 절규의 순간에도

그래도

누군가 한 사람은 살려야 하기에

선택의 기로에 선 소피

 

점점 멀어져 가는

딸아이의 울음소리

어미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김순선 시집 어느 토요일 오후(한그루,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