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리시 커피
돌담길 에돌아 난간에
올라서니
오묘한 향기 코끝에 스미는구나
정갈한 서재, 눈발에 유혹하는
시나브로 연정淵靜이라
램프의 타오르는 불꽃은
투명한 두 볼에 홍조를 보내고
오묘한 그 향이 무엇인가
했더니
아이리시, 라구요
따뜻하게 내리쬐는
난간 모퉁이 때 이른 철쭉, 너의
오묘함이 詩샘에 빠지니 하- 일장춘몽이라
♧ 칠게*
게는 세상이 질척질척해서
진흙 뻘에 산다는 말
쳐다보면
숨죽여 부둥킨다
선택되지 않길 바라는
것처럼
몇 백 원 차이로 수북한
것들
쌍 눈으로 바라보며
갯벌에 산다는 게들이
저들도 살고 싶어
얼마나
바동거렸을까
질퍽하고 매끄러운
개흙 뒤집어쓰면
피부도 찰게 고왔을 것들
수경 매달아
세상 바라본 행복했던 마음 알까
사는 법은 다 거기서 거기
---
*달랑겟과의 게.
♧ 인사동에서
1.
만추의 계절이었을 거야
오랜만에 머리 웨이브도
날렸더랬어
짧은 말미, 주어진 여가는
짧은 가방, 등에 얹어 시인의
길에 물들어 봤지 아마
황혼 블루스 날리며
완경에 물드는 거리였던 거
같아 아마도 그랬어
김향아 미완성은 아직
끝나지 않은 진행형이었지
날 설던 지난날
반추해 보는
인사동 쌈지길
목마름 휘날리던
옛 시인들 거리
천상병 시인 ‘귀천’에
들어 잠시 머물렀더랬지
2.
언제 한번 또 올 일이 있을까
내 생전 잠시 스치던 날 있었겠다
막내 유학길에 상경한 그때
아득히 먼 후일
곰삭아 익어가던
푸른 청춘의
곱단이와 상경하던 그날
정기검진 받던 그날이었어
나만큼이나 글쟁이가 꿈같았던
아픈 첫손가락
생애 최선을 위해 다잡던
마음 한데 모을 때
후회 같지 않은 삶 다독이는
행위의 길목에서
쌈지길 노을에 젖어
* 김항신 시집 『연서戀書』 (한그루, 202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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