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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혜향문학' 2024년 상반기호의 시(2)

by 김창집1 2024. 7. 23.

 

 

[문인초대석]

 

봄날 가듯 조선회

 

 

191072일생 이경생 씨가

나들이 나선다

 

가난한 광산 김씨 종손 집에 시집와서

남의 집 품팔이만 하던 여자

자식들 배불리 먹이는 게 평생소원이던 여자

훌쩍 일본으로 밀항 간 아들 그리워하다

끝내 못 보고 피 토하며 눈 감은 여자

 

제비꽃 총총 따스하게 핀 봄날

묘적계도 없는 남루한 집을 떠나

영정 속의 자신보다 더 늙어버린

칠순의 자식을 따라

납골당이 있는 천왕사로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는

노래 가사처럼

봄바람이 젖은 눈시울 말리는 사이

숲은 눈물을 찍으며 초록으로 넘어간다

 

 


 

미선나무 - 이승은

    -절두산순교지

 

 

여리고 하안 손등 향기 짙은 눈썹위에

 

잃은 봄을 환불 받듯 네 그늘이 다가선다

 

이렇게 떨며 스쳐간 목덜미의 꽃 얼룩

 

 


 

동두천 춘분 - 정용국

 

 

이른 봄 시샘 추위 얇은 옷깃 스미는데

 

산막에 깃들이고 새집 짓는 딱새 한 놈

 

집주인 아랑곳없이 대공사가 바쁘다

 

 

방해 될까 눈치 보여 라디오도 꺼놓고

 

쉴 새 없는 공사판을 응원하고 있는데

 

철없는 미군 헬기는 깐죽대며 지나갔다

 

 


 

[초대작품]

 

업장소멸 - 권애자

 

 

무거운 잠 못 이겨

몸을 누인다

 

내 몸,

세포 속에 갇힌 물방울들

하나하나 비집고 나오더니

오색 빛줄기 따라 하늘로 을라간다

 

백일기도 마친 날

잠시, 허공에 다녀왔다

 

 


 

혼밥 일대스님

 

 

매일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래서 혼밥이라는

단어까지 생기고

이제 고독한 밥, 쓸쓸한 밥

각자 먹는 밥

우리가 아닌

식구가 아닌

혼자 개인 낱낱이

숟가락 들어야 할

식사 시간

밥알이 흩어져

까칠하게 씹히는

혓바늘 돋은 듯

씹히는 밥

 

목구멍에 삼켜

넣어야 사는

생존의 밥

 

맛볼 여유 언감생심

다만 배고픔

허기 때우는

 

집밥보다

맛집 찾기 일상이 된

그런 혼밥 세상에

녹아들고 있다.

 

 

                    *혜향문학2024/상반기(통권 제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