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초대석]
♧ 봄날 가듯 – 조선회
1910년 7월 2일생 이경생 씨가
나들이 나선다
가난한 광산 김씨 종손 집에 시집와서
남의 집 품팔이만 하던 여자
자식들 배불리 먹이는 게 평생소원이던 여자
훌쩍 일본으로 밀항 간 아들 그리워하다
끝내 못 보고 피 토하며 눈 감은 여자
제비꽃 총총 따스하게 핀 봄날
묘적계도 없는 남루한 집을 떠나
영정 속의 자신보다 더 늙어버린
칠순의 자식을 따라
납골당이 있는 천왕사로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는’
노래 가사처럼
봄바람이 젖은 눈시울 말리는 사이
숲은 눈물을 찍으며 초록으로 넘어간다
♧ 미선나무 - 이승은
-절두산순교지
여리고 하안 손등 향기 짙은 눈썹위에
잃은 봄을 환불 받듯 네 그늘이 다가선다
이렇게 떨며 스쳐간 목덜미의 꽃 얼룩
♧ 동두천 춘분 - 정용국
이른 봄 시샘 추위 얇은 옷깃 스미는데
산막에 깃들이고 새집 짓는 딱새 한 놈
집주인 아랑곳없이 대공사가 바쁘다
방해 될까 눈치 보여 라디오도 꺼놓고
쉴 새 없는 공사판을 응원하고 있는데
철없는 미군 헬기는 깐죽대며 지나갔다
[초대작품]
♧ 업장소멸 - 권애자
무거운 잠 못 이겨
몸을 누인다
내 몸,
세포 속에 갇힌 물방울들
하나하나 비집고 나오더니
오색 빛줄기 따라 하늘로 을라간다
백일기도 마친 날
잠시, 허공에 다녀왔다
♧ 혼밥 – 일대스님
매일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래서 혼밥이라는
단어까지 생기고
이제 고독한 밥, 쓸쓸한 밥
각자 먹는 밥
우리가 아닌
식구가 아닌
혼자 개인 낱낱이
숟가락 들어야 할
식사 시간
밥알이 흩어져
까칠하게 씹히는
혓바늘 돋은 듯
씹히는 밥
목구멍에 삼켜
넣어야 사는
생존의 밥
맛볼 여유 언감생심
다만 배고픔
허기 때우는
집밥보다
맛집 찾기 일상이 된
그런 혼밥 세상에
녹아들고 있다.
*『혜향문학』 2024년/상반기(통권 제22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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