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령이골에서 양용찬 - 김규중
그는 4․3 전사(戰士)의 진정한 후예다
그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 후반
4․3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물결이 일어나고
학생들은 4․3을 ‘死․삶’이라고
표현하며 항쟁의 엄혹함을 느끼려 했다
死와 삶을,
우리의 살과 뼈를 갉아먹는 개발특별법을*
백척간두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사람이 그다
당시에 송령이골 존재가 알려졌으면
그는 자기 몸에 불사르기 전날
아마 송령이골을 찾아 갔을 것이다
타일공 일을 마치고
작업복으로
쑥부쟁이 한 송이
낮은 무덤 앞에 놓으며
묵상에 잠겼을 것이다
일기장에 써놓은 자신의 시 한 구절
철쭉꽃 입에 물고 쓰러져간
4․3 전사(戰士)들이 부활하는
지주 민주 통일의 꽃**
을 조용히 읊조렸을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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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용찬 열사의 유서의 일부
** 양용찬 열사의 시 「어머님 전상서」의 일부
♧ 외면 - 김대용
1. 저녁시간에 뉴스가 다급하게 소리친다
초점 안으로 그 사내가 터벅터벅 다가온다
그리고 억지 미소로 채색하고 새로운 생각처럼
며칠 전 말한 혀의 원고를 다시 읽는다
깊은 잠속에서 깨어나다 들었다
며칠 거울을 보지 않았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따뜻한 인형은 혼자 중얼거린다.
거울아 일정한 목소리는
건들면 자지러지는 신음을 낸다
노을 진 거리에서 다시 만나는 네온의 골목
2. 이 도시 새들은 일시에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그의 혀는 과욕은 언제나 화근이다 이런 시가전에서
남겨 둘 것과 버려야 되는 그림들을 정리하는 일은
시민들의 고유 영역이었다.
석유와 밀가루는 세상 얽매이게 하는 그물
그 옆에 숨어 피운 이주 노동자의 담배꽁초에서
시작되는 불행은 어찌 되었나
3. 그가 남긴 것은 없다 한다. 그리고 그렇게 제일
외로운 약속은 스스로를 목메게 했다 한다.
그의 피붙이는 없고 이름뿐이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 간곡한 전언(傳言 ) - 김병택
저 험한 산을 반드시 오를 각오로
힘차게 출발하는 일이라고 한다
눈앞에 수시로 웃으며 찾아오는
달디단 휴식의 유혹을 물리치고
가벼운 돌멩이도 무겁게 밟으며
항상 조심하는 일이라고 한다
바람이 불고 눈비가 내린 뒤의
아주 깊은 곳에 숨어 있는 햇살을
찾아내는 뜻깊은 일이라고 한다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의 장막을
애써 지우는 일이라고 한다
머리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몽상을 제거하는 일이라고 한다
몸이 부서질 것처럼 힘들어도
게으름의 끊임없는 공격으로부터
‘나’를 막아내는 일이라고 한다
매일 쌓여가는 공론의 관념을
철저히 부수는 일이라고 한다
결국 마지막엔 ‘나’조차 몰라볼
다른 ‘나’를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
이 세상의 파도를 넘어서는 것은
*계간 『제주작가』 여름호(통권제85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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