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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제주 PEN문학' 통권 제20집의 시(2)

by 김창집1 2023. 10. 31.

 

 

무심을 따라가다 - 김원욱

    ㅡ하롱베이

 

 

남녘에는 맑은 별들이 오순도순 모여 산다

비릿한 바다 냄새를 뚫고 곳곳에 박혀 있는 휑한 눈망울

아무래도 무릉도원인가 싶은데

한때 삼신할망을 따라나섰다가 잠시 의탁했던 비양도, 그 건너

남극성쯤은 아닐까

내가 만일 샤먼의 눈 속에 들어 부표처럼 마냥 흘러왔다면

방울소리 북소리 징징 울어대는 하늘 문전에서

천지가 솟구치던 그날처럼 앵앵 울어볼 참인데 할머니는

자꾸만 나를 붙들며 칠성으로 가자하고 돌아보면

언제부터인가 내밀한 곳에 침잠된 설렘이 넘실대는

별 무리 사이

단 한 번 눈길이 딱, 머물렀을 뿐인데

제주에서 따라온 적막이

하늬바람에 떠밀려서 죄다 지워질 것만 같은

배방송*으로 띄워 보낸 허망한 꿈일 지도 모를 일인데

어쩌자고 몸 안 깊숙이 적멸의 길을 닦아 놓았는지

곳곳에 불을 켠 영등이

무심(無心)인 듯

무심(巫心)일 듯 하롱하롱

떠도는 남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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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방송은 제주 영등굿에서 영등신을 본국인 강남천자국또는 외눈박이섬으로 보내기 위해 짚이나 널판지로 만든 작은 배에 여러 가지 재물을 조금씩 실어 바다에 띄워 보내는 제차(第次).

 

 

 

 

베트남에 핀 꽃 양금희

 

 

한라산의 기운을 안고

제주공항을 출발했다

 

인천공항을 거쳐

다섯 시간을 날아 도착한 베트남엔

부겐빌레아*처럼 뿌리내린

대한 사람 김정숙*이 마중 나와 있었다

 

고향에 두고 온 부모 생각에

눈시울 붉어지다가도

한 민족 한 핏줄로 이어진 고향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로 무궁화꽃이 활짝 피어났다

 

새로운 이정표를 찾아

낯선 땅에 심은 희망의 씨앗

한국인의 긍지 잊지 않고

망망대해를 비추는 등대가 되었다

 

숙명처럼 뿌리내린 이국땅에서

화사한 햇살 고이 받아

부겐빌레아 꽃송이 활짝 피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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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겐빌레아 : 베트남 사람들이 매우 좋아하는 꽃으로 베트남 어디에서든 흔하게 볼 수 있음

*김정숙 : 베트남 현지 가이드

 

 

 

 

들판의 동백꽃 나기철

 

 

  오름 오르기 위해 가는, 바람 차고 추운, 사람들 별 다니지 않는 들판, 꽃들 붉게 피우며 거기 동백꽃 하나 서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나무 아래 머물다 거기서 얼마 되지 않는 한 오름을 올랐습니다. 오름은 마른 줄기 가로막고 가팔랐습니다. 친구와 나는 일행과 떨어져, 오르다 오르다 힘겨워, 내려가 동백나무를 표지로 그 옆에 누워 있기로 했습니다. 한참 후 오름 다 오른 일행들 내려와 우리 곁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다른 곳 달리 동백나무 일정한 주위에는 희한하게 바람 하나 없는데 가만히 보니 동백꽃 붉은 빛깔들, 그 힘으로 바람을 멀리멀리 보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거기 있는 마른 억새랑 들풀이랑 우리들 모두 따스하게 녹여주며.

  얼마 후 우리는 거길 떠났지만 그 동백나무 오래오래 그 곳서 그 부근 고요하게 해줄 것 같았습니다. 따스하게 해줄 것 같았습니다.

 

 

 

 

아름다운 순간 강방영

 

 

빛이 지나갔다

투명한 듯 나를 투과하면서

초여름 초록 잎들 흔드는 나무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비추는 햇살처럼

빛이 어둠을 밀고 비쳤다

빛나는 사랑이 날았다

 

 

 

 

대나무 숲의 소리 강병철

 

 

아무리 강한 바람이 불어도

푸른 숲은 무너지지 않아

바람이 지나가면

푸른 숲은 높고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서 있어,

감탄할 만한 영감을 주지

 

대나무 숲의 소리,

나무들 사이에 울려 퍼지지,

지혜와 평화의 속삭임,

부드러운 바람에 실리지.

 

속삭이는 잎들의 교향곡,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겨,

대나무 숲의 계곡에서 울리는 화음

 

숲이 말하는 것을 듣고

지혜의 길로 이끌게 두라

대나무의 소리를 들으며,

하루하루 평화를 찾을 수 있으리니

 

 

    * 국제PEN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 간제주 PEN문학2023 통권 제20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