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집
난 아직 너무 모릅니다
어떻게 눈 뜨는지
마지막 별
어느 창에서 인사하는지
아침 밥상
어떤 반찬 만드는지
일층인지 이층인지
옷장 어디 있는지
책장 무슨 색인지
어떤 책들 꽂혀 있는지
돌아올 때 어떻게 문 여는지
활짝 여는지
살며시 여는지
잠들 때 어떤 이불 덮는지
눈 어떻게 감기는지
무슨 잠이길래
늘 상앗빛 목소린지
산호해변 눈빛인지
난 아직 너무 모릅니다
♧ 사이
-이준관 시인께
제가 있던 학교에 ‘천국의 계단’이 있었습니다. 저는 어느 여선생과 몰래 그 계단을 넘어 소성당에 가기도 했습니다. 주위엔 녹나무 그늘, 때론 나리꽃, 백합도.
시집을 읽으며 거길 떠올립니다. 우리를 청정 아득하게 하는 거기, 너무 먼 거기를.
♧ 불 켜진 창
그제도 불이 안 켜져 있었다
어제도 불이 안 켜져 있었다
오늘은 켜져 있다
남편 따라 육지서 와
오년 전
혼자 된 여자
오늘은 시내 딸네 집에서 왔나 부다
온통 가족사진으로 도배한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
입구
그녀의 집
♧ 불빛
밤 아홉시
혼자인 그 여자
집 앞 차 안에서
밝게 전화하고 있다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 비망備忘
제주시 중앙로 지하상가
액세서리점
액세서리 같은 여자
액세서리처럼
떨어져
사과나무꽃으로
피어
* 나기철 시집 『담록빛 물방울』(서정시학, 202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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