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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나기철 시집 '담록빛 물방울'의 시(2)

by 김창집1 2023. 11. 8.

 

 

그 집

 

 

난 아직 너무 모릅니다

어떻게 눈 뜨는지

마지막 별

어느 창에서 인사하는지

아침 밥상

어떤 반찬 만드는지

 

일층인지 이층인지

옷장 어디 있는지

책장 무슨 색인지

어떤 책들 꽂혀 있는지

 

돌아올 때 어떻게 문 여는지

활짝 여는지

살며시 여는지

 

잠들 때 어떤 이불 덮는지

눈 어떻게 감기는지

 

무슨 잠이길래

늘 상앗빛 목소린지

산호해변 눈빛인지

난 아직 너무 모릅니다

 

 

 

 

사이

   -이준관 시인께

 

 

  제가 있던 학교에 천국의 계단이 있었습니다. 저는 어느 여선생과 몰래 그 계단을 넘어 소성당에 가기도 했습니다. 주위엔 녹나무 그늘, 때론 나리꽃, 백합도.

  시집을 읽으며 거길 떠올립니다. 우리를 청정 아득하게 하는 거기, 너무 먼 거기를.

 

 

 

 

불 켜진 창

 

 

그제도 불이 안 켜져 있었다

어제도 불이 안 켜져 있었다

오늘은 켜져 있다

 

남편 따라 육지서 와

오년 전

혼자 된 여자

오늘은 시내 딸네 집에서 왔나 부다

 

온통 가족사진으로 도배한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

입구

그녀의 집

 

 

 

 

불빛

 

 

밤 아홉시

혼자인 그 여자

집 앞 차 안에서

밝게 전화하고 있다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비망備忘

 

 

제주시 중앙로 지하상가

액세서리점

액세서리 같은 여자

액세서리처럼

떨어져

 

사과나무꽃으로

피어

 

 

                    * 나기철 시집 담록빛 물방울(서정시학,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