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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배진성 시집 '이어도공화국⑤ 우리들의 고향'의 시(4)

by 김창집1 2023. 11. 11.

 

 

별빛과 불빛

 

 

하늘의 구멍가게 같은 십자가들

붉은 눈빛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파도처럼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어린 나를 시장에 버려두고

몰래 지켜보던 눈빛이 보고 싶습니다

세상을 처음 배우던 시장에서도

늘 붉은 십자가로 빛나던

그 깊은 숲속 고아원에서도

나는 그렇게

어머니의 눈빛을 닮은 별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 별을 닮은

불빛을 만들어 나무마다 매달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하늘의 별빛과 지상의 불빛

우리들은 이제 그렇게 늘 반짝이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혀를 찾아서

 

 

너무 불순해진 혀를 잘라

숲속에 버려 버렸다

말랑말랑했던 혀가 굳어

누군가에게

면도날이 되었던

바로 그 혀를 잘라

숲속으로 던져버렸다

그 숲에서

새들이 날아오르고

혀 같은 단풍잎들이

바람에게 날리기 시작했다

혀는 없이

검붉은 거머리 두 마리만

달라붙어 있는 입은 이제

부드러운 혀를 찾고 싶다

나는 이제 다시

그 누구보다도

부드러운 혀가 그립다

무섭고 딱딱한 혀들이 무성한 숲에서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혀를 찾고 싶다

 

 

 

 

길 끝에 서 있는 길

 

 

길 끝에서는 언제나

또 다시 길이 열린다

길을 찾아가는 길

나는 언제나 그렇게

길이 있으면

길 끝까지 가보고 싶다

 

희망은 늘 그렇게 있다

 

 

 

 

사람의 고향

 

 

당신을 찾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고향이 바로 당신 가슴에 있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당신은 살아있는 무덤입니다

아직은 따뜻한 나의 무덤입니다

 

 

 

 

보아뱀

 

 

서귀포 화순해수욕장에는 섬을 꿀꺽 삼켜버린

커다란 보아뱀 두 마리 살고 있다

산방산을 삼키고 부처의 고뇌를 삼켜버린 보아뱀

보아뱀 두 마리 오늘도 바다로 기어가고 있다

추사의 세한도를 삼켜버린 용머리 보아뱀

횟집과 민박집을 삼키고 부른 배로 기어가는 보아뱀

보아뱀 두 마리 화산처럼 부글거리며

이어도로 가고 있다

 

나는 그 보아뱀이 삼켜버린 많은 전설을 알고 있다

갈대숲의 새와 검은 쥐들과 취객이 토해놓은

어둠과 욕망의 내력들을 다 알고 있다

보아뱀 뱃속에 좌선하는 부처님과 추사가 코끼리 꼬리에 대하여

한담을 나누고 있다

가끔은 무지개의 뿌리 쪽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보아뱀

 

바람이 거세어 배들이 피항하는 화순항

바람이 거세질수록 화순 앞바다를

기어가는 뜨거운 보아뱀 두 마리

지금 막 빠져나가고 있다

이어도로 가고 있다

 

 

                *배진성 시집 이어도공화국⑤ 『우리들의 고향(시산맥,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