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빛과 불빛
하늘의 구멍가게 같은 십자가들
붉은 눈빛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파도처럼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어린 나를 시장에 버려두고
몰래 지켜보던 눈빛이 보고 싶습니다
세상을 처음 배우던 시장에서도
늘 붉은 십자가로 빛나던
그 깊은 숲속 고아원에서도
나는 그렇게
어머니의 눈빛을 닮은 별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 별을 닮은
불빛을 만들어 나무마다 매달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하늘의 별빛과 지상의 불빛
우리들은 이제 그렇게 늘 반짝이고 있습니다
♧ 잃어버린 혀를 찾아서
너무 불순해진 혀를 잘라
숲속에 버려 버렸다
말랑말랑했던 혀가 굳어
누군가에게
면도날이 되었던
바로 그 혀를 잘라
숲속으로 던져버렸다
그 숲에서
새들이 날아오르고
혀 같은 단풍잎들이
바람에게 날리기 시작했다
혀는 없이
검붉은 거머리 두 마리만
달라붙어 있는 입은 이제
부드러운 혀를 찾고 싶다
나는 이제 다시
그 누구보다도
부드러운 혀가 그립다
무섭고 딱딱한 혀들이 무성한 숲에서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혀를 찾고 싶다
♧ 길 끝에 서 있는 길
길 끝에서는 언제나
또 다시 길이 열린다
길을 찾아가는 길
나는 언제나 그렇게
길이 있으면
길 끝까지 가보고 싶다
희망은 늘 그렇게 있다
♧ 사람의 고향
당신을 찾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고향이 바로 당신 가슴에 있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당신은 살아있는 무덤입니다
아직은 따뜻한 나의 무덤입니다
♧ 보아뱀
서귀포 화순해수욕장에는 섬을 꿀꺽 삼켜버린
커다란 보아뱀 두 마리 살고 있다
산방산을 삼키고 부처의 고뇌를 삼켜버린 보아뱀
보아뱀 두 마리 오늘도 바다로 기어가고 있다
추사의 세한도를 삼켜버린 용머리 보아뱀
횟집과 민박집을 삼키고 부른 배로 기어가는 보아뱀
보아뱀 두 마리 화산처럼 부글거리며
이어도로 가고 있다
나는 그 보아뱀이 삼켜버린 많은 전설을 알고 있다
갈대숲의 새와 검은 쥐들과 취객이 토해놓은
어둠과 욕망의 내력들을 다 알고 있다
보아뱀 뱃속에 좌선하는 부처님과 추사가 코끼리 꼬리에 대하여
한담을 나누고 있다
가끔은 무지개의 뿌리 쪽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보아뱀
바람이 거세어 배들이 피항하는 화순항
바람이 거세질수록 화순 앞바다를
기어가는 뜨거운 보아뱀 두 마리
지금 막 빠져나가고 있다
이어도로 가고 있다
*배진성 시집 이어도공화국⑤ 『우리들의 고향』 (시산맥, 202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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