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란
간섭하지 않으면 죽는 일, 없을 거다
물길 찾아 끝 간 데까지 가보는 여정이다
좀처럼 고백하지 않는
내 사랑이 그렇다
♧ 먹통
지도를 펼쳐보면
지금 어딜 지나는 걸까
첫 발령지 연천이거나
아니면 서귀포쯤
그때 그 찻집에 앉아
먹줄이나 튕겨 볼 걸
♧ 불시 개화
지난봄에 이미
툭툭 털어 보냈는데
몇 번의 태풍 끝물
다시 핀 서귀포 목련
검색창 클릭하다가
딱 걸린 당신 근황
♧ 그만 하자
오늘따라 혼밥이 참말로 형벌 같아
식탁에 수저 한 벌 더 가지런히 놓아봅니다
이대로 잊을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인지요
♧ 꽃집에서 굽다
결국, 꽃만으론 적자를 못 면하나 보다
여덟 평의 꽃가게 그나마 반을 쪼개
문짝에 마카롱카페 간판을 내걸었다
사흘은 꽃을 팔고 사흘은 빵을 굽고
그리고 또 하루는 시모임에 나간다
가슴에 얹혀진 문장 그 꿈을 못 지운다
코로나가 쪼개 놓은 서귀포의 한 구석
꽃을 팔던 손으로 마카롱을 만지면
또로록 굴러가다가 어느 순간 꽃이 될라
*김영순 시집 『밥 먹고 더 울기로 했다』 (시인동네 시인선 215, 2023)에서
*사진 : 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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