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영순 시집 '밥 먹고 더 울기로 했다'의 시(7)

by 김창집1 2023. 12. 10.

 

 

한란

 

 

간섭하지 않으면 죽는 일, 없을 거다

 

물길 찾아 끝 간 데까지 가보는 여정이다

 

좀처럼 고백하지 않는

내 사랑이 그렇다

 

 

 

 

먹통

 

 

지도를 펼쳐보면

지금 어딜 지나는 걸까

 

첫 발령지 연천이거나

아니면 서귀포쯤

 

그때 그 찻집에 앉아

먹줄이나 튕겨 볼 걸

 

 

 

 

불시 개화

 

 

지난봄에 이미

툭툭 털어 보냈는데

 

몇 번의 태풍 끝물

다시 핀 서귀포 목련

 

 

검색창 클릭하다가

딱 걸린 당신 근황

 

 

 

 

그만 하자

 

 

오늘따라 혼밥이 참말로 형벌 같아

 

식탁에 수저 한 벌 더 가지런히 놓아봅니다

 

이대로 잊을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인지요

 

 

 

 

꽃집에서 굽다

 

 

결국, 꽃만으론 적자를 못 면하나 보다

여덟 평의 꽃가게 그나마 반을 쪼개

문짝에 마카롱카페 간판을 내걸었다

 

사흘은 꽃을 팔고 사흘은 빵을 굽고

그리고 또 하루는 시모임에 나간다

가슴에 얹혀진 문장 그 꿈을 못 지운다

 

코로나가 쪼개 놓은 서귀포의 한 구석

꽃을 팔던 손으로 마카롱을 만지면

또로록 굴러가다가 어느 순간 꽃이 될라

 

 

     *김영순 시집 밥 먹고 더 울기로 했다(시인동네 시인선 215, 2023)에서

                                              *사진 : 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