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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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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동 4․3길 1코스(2) □ 많은 사연을 안고 있는 설새미     샘은 주변에 부지정리를 하면서 지금은 시멘트 구조물로 남아 있다. 수도가 들어오기 전까지 사용한 흔적이 보인다. 주둔소가 이곳에 들어온 것은 이 샘물을 사용할 수 있어서였다. 1948년 6월 초, 일부 군인들이 입산하면서부터 미군정에게 경원시 당하던 모슬포 9연대 소속 11연대 1대대는 제주농업학교 연대본부를 거쳐 이곳 설새미에 주둔하게 된다.   당초 죽성부대는 기존 9연대의 제주병력으로 이루어진 부대로 토벌작전 및 무기보급 등에서 차별을 받았다고 하며, 사실상 외딴곳에 격리조치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군인들이 이곳 설새미에 주둔하기 시작하면서 오등리와 아라리 등 주변마을의 희생도 컸다. 죽성에 살던 한 주민은 잡혀간 사위를 빼내기 위해 황소까지 이.. 2025. 4. 9.
아라동 4․3길 1코스(1) □ 산천단에서 시작되는 1코스     제77주년 4․3 추념식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아라동 4․3길을 걷기로 했다. 이번 추념식 슬로건은 전국적으로 모집해서 당선된 ‘4․3의 숨결은 역사로, 평화의 물결은 세계로!’라는데, 그에 맞춰 4․3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아라동 4․3길은 두 코스로 나누어져 있다. 1코스는 산천단에서 문형순 경찰서장의 묘지터, 설새미주둔소, 죽성마을, 제주양씨 열녀비, 인다 4․3성, 박성내 등을 거치는 8.3km 구간으로 약 2시간이 소요된다. 2코스는 4․3때 큰 피해를 입은 관음사에서 진지동굴, 동세미, 불칸낭, 월평 4․3성, 2연대 군인전사자 추모비, 조록나무를 거쳐 영평상동 마을회관에 이르는 9km 구간으로 2시간 3.. 2025. 4. 8.
월간 '우리詩' 3월호의 시(완) ♧ 추앙과 추락 사이 – 권순자    허공과 허공을 이은 막대에 발을 올린다 지렛대 끝 가벼운 몸이 가벼운 말을 따라 솟구친다 희미하고 어른거리는 자태 빛깔의 오색 찬란히 눈부시다   일거수일투족에 환호하는 손바닥들 목소리는 안개 속을 굴러다니고 메아리치는       ♧ 탈출 풍경(흔들리는 풍경) - 지소영    너의 별을 수호하지 못했다 오만한 점령 황금이 불탄다   노란 엑기스 바다로 침투한다 오렌지로 이탈한 하늘은 녹아 투명 수정체를 위협하며 고양이 발톱처럼 긁어대고 있다   아름다웠던 캔바스에 어둠의 데칼코마니 화성과 지구는 스스로 본연의 역사를 지우고 있다 외면당한 수성의 푸른 눈물 퍼시픽 팰리세이즈*에는 검은 사랑의 표고들이 풍경을 바꾸고 있다   .. 2025. 4. 7.
김항신 디카시집 '길을 묻다'의 시(5) ♧ 아픈 손     손바닥 갈래갈래 다섯 손가락   가슴 애리는 엄지 손가락     곰삭다보면 괜찮아 질까   수정처럼     ♧ 악마의 발톱     어느 날 불현 듯 허리 통증 오더니 어느 날 다리도 아프더라   죽어라 걷고 싶어도 맥없어 못 걷더라   어머니! 효자 발톱이래요     ♧ 닭모루 만난 날   너도 우두커니 외로움에 젖을 때가 있겠다  출렁이는 소리에 달빛 아래 오도카니 나도 오도카니 너에게로 와 달랠 수 있어 좋았던 너를 만난 날     ♧ 날갯짓 백로   구름 타고 바람 타고 가을가을 날개짓   엄마와 호흡하던 곤을동 갯것     ♧ 시, 왓   지구 종말이 온다 해도 우리는 해낼 수 있어요 그래 봄날이 지척이란다 세상이 밝아오는 시, 왓   ---*왓 : 밭.(제주어)   .. 2025. 4. 6.
'제주시조' 2024 제33호의 시조(11) ♧ 해바라기잠* - 양상보    종가의 작은 아내로 시집오신 왕할머니   네 집이 한동네서 엉키듯 살았다고,   그 틈에 괄시 받으며 평생이 그늘이셨지    제대로 마주 앉아 눈도 못 맞추다가   보름달 뜰 때쯤이나 그림자로 다녀갔다고   생전엔 못해본 질투 저리 누워 하시는가    맨 위 산소 자리 이제 한이 풀렸을까   이승에서 못다 한 정 서너 뼘 챙겨가며   이불 속 발을 맞대듯 이야기꽃 한창이다     --- *해바라기 모양으로 빙 둘러 지는 잠.      ♧ 형님 존경합니다 – 오영호      조객들 밤샘하다 벌어진 섯다판     ‘공갈청 먹젠 말앙 끗발 어시민 빨리빨리 죽읍서.’ 선 잡은 조 선생의 말에 서툰 김 선생 패를 보니 앞 장이 장이라 콩닥콩닥 뛰는 가.. 2025. 4. 5.
월간 '우리詩' 3월호의 시와 복숭아꽃(7) ♧ 서리 – 위인환    처음으로 이력서를 내고 면접 보던 날   작업복 입고 용접봉을 녹이며 불똥 맞던 날   해고장을 받고 출입문 나서며 푸른 하늘 보던 날   흐르는 눈물로 족적을 지운 로맨스그레이*   --- * 머리가 희끗희끗한, 매력 있는 중년 신사     ♧ 길고양이에게 말한다 – 이기헌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준다 그러나 오늘은 그가 불쌍해서가 아니다 흐트러진 마음 달래려고 외로움 한쪽 던져주는 것이다 그가 풍요로운 도시에서 한 끼의 먹이를 구하지 못할까만 삶에 지쳐 걷는 이 밤 삶의 길을 가는 고양이에게 오히려 나는 그의 안식을 구걸한다   길고양이에게 말한다 내 외로움을 먹고 떠나거라 모처럼 색다른 먹이를 먹고 어둠 너머로 가서 이 밤.. 2025.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