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416 월간 '우리詩' 10월호의 시(6)와 억새 ♧ 새벽 운동 사선으로 날아드는 화살촉 햇살이 어설픈 어둠을 털어 내는 나의 새벽은 하루치의 보험료를 납부하는 경건한 시간 푹푹 찌는 한증막과 냉혹한 한파에도 거를 수 없는 내 보험료의 질료는 심연의 잠을 들어 올리는 수고로움과 무덤처럼 널브러진 근육과 혈액의 에테르를 소환하여 궁극의 인내와 숨결의 절박함을 격발시키는 것, 깊숙이 파고드는 신성한 공기를 아이처럼 맞이하는 것 질병과 고통을 필요로 하지 않는 나의 보험금은 실존하는 평안과 시들지 않는 내일이다 ♧ 개, 소리 - 이영란 이름은 모르지만 그는 분명 개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눈을 마주치기 싫어 고개를 돌렸다 거울 속에는 늙은 개가 입.. 2024. 11. 3. 안상근 시집 '하늘 반 나 반'의 시(2) ♧ 봄이잖아요 두툼한 외투 호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고개 숙인 채 걷고 있노라니 여기저기서 소리가 새어나온다 ‘봄이잖아요’ 꽃집 유리창 너머로 무더기 안개초가 손을 흔들고 노란 프리지어도 웃어 보이고 수선화도 작년처럼 그대로 있었다 호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고개 들어 하늘과 반기는 꽃들을 보며 혼자 중얼거린다 ‘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고사리 우뚝 서서 쳐다볼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풀썩 주저앉았을 때에야 탄식처럼 너를 만났다 내가 낮아져서야 비로소 네가 보였다 오므린 작은 손으로 대지를 뚫고 나은 네가 빛처럼 거기에 있었다 ♧ 똥 똥이 더럽지 않다면 그건 사랑이다 똥을 보고도 피하지 않는다면.. 2024. 11. 2. 장영춘 시집 '달그락, 봄'의 시(13) ♧ 사월을 노래하다 -고사리 겨우내 허허 들판 음지로만 키워온 이제는 화해와 상생, 사월의 피켓 들고 누구나 선착순이다, 평화를 노래하는 날마다 제 한 몸 기꺼이 내어주며 꺾고 꺾어도 별빛처럼 감겨오던 할머니 귀밑머리에 새치처럼 돋아난 ♧ 단비 종일 내렸다 얼마나 많은 날, 들판 위에 서 있었나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했네 4․3의 행방불명 영령, 백비로 누운 날 오랜 시간 말문 닫고 침묵으로 답하시던 겨우내 아랫목에 피워 올린 꽃 등 하나 컴컴한 세상을 건너 손 흔드는 영령이시여 그토록 마른하늘에 단비 종일 내렸다 대지를 흠뻑 적신 땅 위에 아지랑이 진혼곡 한 구절 한 구절 후.. 2024. 11. 1. 최기종 시집 '만나자'의 시(2) ♧ 물꼬 마른 논에 물 들어온다 남북한 정상이 삽으로 논두렁 팍팍 봄 가뭄 들어낸다 그 얼마나 타는 목마름이었더나 그 얼마나 기다리던 물내림이있더나 순천자 필흥 역천자 필망이라고 물 내리는 소리 얼씨구 저절씨구 물드는 소리 지화자, 지화자 좋구나 마른 논에 물 들어온다 무논에 새 날아간다 남북한 정상이 쟁기질하고 써레질하고 씨줄날줄 못줄을 잡는다 그 얼마나 바라던 모내기더냐 그 얼마나 꿈꾸던 두레밥상이더나 남에서 소리하면 북에서 받고 북에서 줄을 띠면 남에서 이어가고 무논에 새 날아간다 철조망에도 꽃이 핀다 남북한 정상이 분계선 마주 보고 손을 잡고 65년 북풍한설 녹여낸다 이 얼마나 뜨거운 악수더냐 이 얼마나 피어나던 하나의 봄이더냐 ‘평화와 번영’.. 2024. 10. 31. 제주4․3 '76주년 추념시집'의 시(1) * 수평선 접힌 자국마다 그늘진 절벽 ♧ 섯알오름 구름 터 – 강경아 중산간에 걸린 구름이 좋겠어요 총칼에 베인 만장이 붉게 펄럭거려요 골절된 바람, 터진 입술은 부풀어 올라요 퍼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눈물샘처럼 가슴에 커다랗게 뚫린 구명 하나 어드레 가민 촞아짐직 허우꽈? 탄약고 구름 연못 속에 당신이 비춰요 오름이 라는 볏짚 가마니를 들추면 싸늘해진 억새꽃 얼굴들이 쭈뼛쭈뼛 예비검속에 절여져 썩지 않는 기억들 물이끼 습한 어둠으로 덮으려 해도 녹이 슨 철근에 찔린 채 뒤엉켜버려요 잿빛 구름은 뉘엿뉘엿 흐르고 물결이 일지 않은 웅덩이를 바라봐요 죽어도 죽지 않는 당신을 꺼내요 서로 다른 유해가 한 몸이 되어요 백조일손(白組一孫)의 이름으로 .. 2024. 10. 30. 월간 '우리詩' 10월호의 시(5) ♧ 천불동 구름폭포 - 방순미 금강산 자락 잇닿은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 동해 굽어보면 공룡능선과 화채능선 속으로 꽃 같은 바위 봉우리 바다와 구분 없는 구름바다 이루면 설악산 봉우리마다 쏟아지는 폭포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 아니듯 구름폭포 속 천불 바위 좌선에 든다 ♧ 겨울 함백산 – 서병학 겨우내 눈 이불을 덮고 있다 바람을 먹고사는 풍차들 배가 부른지 게으름을 피우고 천년 넘게 살아온 주목은 잃어버린 나이를 시멘트로 채웠다 꼿꼿함을 못 견디고 등이 구부러진 나무 자존심을 조금 굽혀야 통과 시킨다 발 디딜 틈 없이 왁자지껄한 정상 찰칵 잘칵 소리와 함께 만세도 부르고 보이자도 만들고 표지석을 끌어안아 보기.. 2024. 10. 29. 이전 1 2 3 4 5 ··· 7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