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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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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 동보 김길웅 '여든두 번째 계단에 서다' ♧ 권두시 늦깎이지만 글은 내 인생이야. 방황에 닻을 내린 건 첫 수필집 ‘내 마음 속의 부처님’이었어. 무애(無碍)의 뜰을 거닐었지. ‘삶의 뒤안에 내리는 햇살’에서 안정을 찾는 듯하더니 ‘느티나무가 켜는 겨울 노래에서’ 한때 곡쟁이처럼 울었어. ‘떠난 혹은 떠난 것들 속의 나’로 이별을 연습하며 ‘검정에서 더는 없다’에선 현란한 색 뒤 남는 담백한 빛―흑과 백을 터득했고, ‘모색 속으로’에서 나이의 무게로 ‘마음자리’에서 흐트러진 삶의 대오를 정돈해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력’과 ‘내려놓다’로 다디단 수필의 서정에 감루를 삼켰지. 결핍에서 ‘여백’과 만나 시작한 내 시, ‘다시 살아나는 흔적은 아름답다’에서 치기로 어머니 사랑을 재음미 했어. ‘긍정의 한 줄’을 만지작거리다 내 시의 앳된 화자는 ‘.. 2023. 9. 20.
새책 : 오영호 시조집 '농막일기' ♧ 시인의 말 시를 쓰고 읽기에 몰두하는 일은 내 삶의 동력입니다. 모든 생명체의 근원 땅과 물, 햇빛, 바람地水火風을 화두로 농막을 오가며, 그 동안 발표했던 작품을 묶어 여섯 번째 시조집을 냅니다. 귤나무, 감나무, 비파나무가 오늘따라 더욱 싱그럽습니다. 연담별서에서 오영호 ♧ 검질*과의 씨름 손바닥만 한 정원에 일주일이 멀다 하고 검질 매던 아내가 허릴 펴다 말고 그 사이 또다시 나왔다고 끝이 없다 투덜댄다 누구는 바람 탓이라고 누구는 새 탓이라고 분분한 공론 끝에 바랭이에게 물었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인연 따라 왔단다 비록 흙수저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박토든 벼랑이든 뿌리 깊게 내려 천수만 누릴 수 있다면 두려울 게 뭐 있으랴 개풀이 발버둥 치며 버티는 사이 바람 타고 날아온 개망초 하얀 씨앗 바.. 2023. 9. 18.
오늘의 시 : 조성문의 '몰라, 베스킨라빈스' 북극의 얼음이 녹고 있다는 보도를 들은 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지금은 그 녹는 정도가 다양한 기간단위로 관측되고 있는 바, 1979년부터 2020년까지 41년 동안 연평균 4.8%씩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 얼음면적은 겨울에 늘고 여름에 줄어드는데, 최근 30년 동안의 여름 얼음면적은 13%씩 줄었다고 한다. 그렇게 살기 좋다는 제주에도 여름철 열대야가 엄청나게 늘어나 올 여름은 너무 견디기 어려웠다. 물론 나이가 조금 들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12시 가까운 밤에도 너무 더워 선풍기를 켜놓고도 땀이 솟는다. 낮에 거문오름 숲을 걸으면서도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인간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저질러 놓은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 ♧ 몰라, 베스.. 2023. 9. 16.
오늘의 시 : '사소함에 대하여' – 김윤현 요즘같이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사소한 것에 연연하다가는 제 명대로 못 산다. 밖으로는 자연재해, 전쟁, 사건사고, 이해타산적 이합집산의 모임이 정말 상상을 초월해 일어나고 안에서도 어수선한 가운데 별의별 일들이 다 벌어진다. 이렇게 엉망으로 돌아가다가는 언제면 마음 놓고 조용히 살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 사소함에 대하여 – 김윤현 뻘이 하는 일을 누가 의심하려 드는가 늪이 하는 일을 누가 부정하려 드는가 누가 함부로 한물간 삶이라 하는가 다들 배를 타고 해외로 눈을 돌릴 때 뭇 생명들 키운다고 땀 뻘뻘 흘린 이도 뻘이고 모두가 아니라며 다리를 놓고 건너 갈 때 새들 먼저 날아오게 한 이도 늪이다 더위에 지친 지구의 체온을 낮춰주는 이도 저들이다 뻘은 뻘로 살아가게 가만 두라 늪을 수면 공원으로 .. 2023. 9. 15.
새책 : 제주작가회의 엮음 '서러울수록 그리울수록 붉어지는' □ 제주4․3 제75주년 추념시집 한국전쟁으로 인한 휴전 70년을 맞는 해, 평화와 인권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열렸던 제20회 4․3평화공원 시화전이 끝나고,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 4․3시화전’의 테마시를 한데 엮은 시집 ‘서러울수록 그리울수록 붉어지는’…. ‘제주주정공장 옛터’는 4․3당시 민간인 수용소로 ‘해방 전후, 제주주정공장(1934년 설립)은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고구마를 원료로 주정을 생산하는 산업시설이었다. 이곳은 4․3 당시 민간인 수용소로 이용됐다. 특히, 1943년 봄에는 피난 입산했다 귀순공작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대거 수용됐다. 혹독한 고문과 열악한 수용환경으로 수용자들은 많은 고초를 겪었다. 이곳에 수용됐던 청장년층 대부분은 재판 후 타지방 형무소로 이송됐고, 이들 중 다수는 .. 2023. 9. 13.
오늘의 시 : 목백합 낙엽 – 김정원 ♧ 목백합 낙엽 – 김정원 집으로 오가는 길에 뙤약볕이 엿볼 틈조차 없도록 무성한 튤립나무라고 하는 목백합 아름드리 그늘에 들어 한눈파는데 때 아닌 단풍잎이 길바닥에 떨어진다 높고 먼 곳에서 달갑지 않게 온 그 누런 주검을 손에 들고 삼가 머리 숙여 들여다보니 올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다. 홍시만 떨어지는 게 아니라 땡감도 떨어진다는 교회와 절에서 듣던 구태의연한 말이 왜 이렇게 참신한 진리처럼 다가올까? 날마다 속이 끓고 시끄러운 세상, 아프고 힘들어도 오늘은 최고의 선물 매미는 한시가 아까워서 밤낮으로 그 허벅진 선물을 낭자하게 노래한다 * 월간 『우리詩』 2023년 9월호(통권 423호)에서 2023. 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