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422 제주 4.3 75주년 추념시집 '서러울수록 그리울수록 붉어지는'(4) ♧ 한수기곶에 들르다 – 김순선 수묵화인 날씨에 연잎 같은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흔들리는 연잎 사이로 핼쑥한 해 숨바꼭질하는 한수기곶 강도 센 돌부리의 지압을 받으며 무장대 발자취 따라 걸어본다 숲에는 아기단풍 곱게 내려와 별처럼 길 인도하는데 아직도 그곳엔 그들의 숨결이 서려 있는 듯 서슬 푸른 탱자나무 가시가 불쑥불쑥 마을 걸어오고 사람 발길이 그리웠던 도깨비바늘도 옷 속으로 파고든다 오늘은 이 궤에서 내일은 저 궤에서 한데 잠을 자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했던 사람들 한 곳에 오래 머물지도 못하여 이곳저곳 은신처를 찾아 헤매던 무리들 그들의 숨소리가 배어 있던 궤에는 박쥐들이 기거 중이고 무장대 함성이 들리던 훈련장엔 두 마리 말이 오토바이 말뚝에 묶여 달리기를 포기한 채 몰방 돌 듯 제자리걸음 .. 2023. 10. 18. 오영호 시조집 '농막일기'의 시조(4) ♧ 검정 고무신 다섯 -섯알오름 소고 누가 아버지를 빨갱이로 낙인찍었나 6.25 피바람에 밤 2시 예비검속자들* 싣고 달리는 GMC에서 벗어 던진 고무신 칠석날 한 줄로 세워 탕, 탕탕 쓰러진 후 아버지 고무신 따라 찾아간 섯알오름 탄약고 막아선 철조망 잡고 통곡하는 어머니 7년 애원 끝에 해제된 출입 금지 파헤친 구덩이엔 뼈와 뼈 엉겨 붙어 누군지 알 수가 없어 백조일손百祖一孫** 되었네 견우직녀 만나는 밤 집마다 향을 피워 제사상 영정 앞에 한 잔의 술을 올리고 엎드린 어머니 아들딸 흐느낀 지 72년 원혼이 서려 있는 학살 터 길을 돌아 추모비 앞에 서면 명치를 꾸욱 누르는 다섯 쪽 검정 고무신 가득 고인 하얀 눈물 --- *6.25 전쟁 초기, 적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이라고 미리 잡아 가두었.. 2023. 10. 17. 월간 '우리詩' 10월호의 시(3) *우리詩 지역회원 특집(포항회원) ♧ 구름 – 차영호 지구상에 현존하는 수십억 얼굴을 한데 모아도 다 다른 구석이 있듯 니 낯도 늘 다르다 재현 불가능한 몸짓으로 줄느림하는 별리別離의 선상 강우대 니가 뒤척일 때마다 코끼리가 흰긴수염고래로 흰긴수염고래는 코끼리로 송출되는, 비 빗물에는 니 지문이 용해되어 있어 내 손가락이 젖을 때마다 겹겹 콘택트렌즈처럼 겹쳐지고 척척한 엄지손가락 지문을 핑계로 니 잠긴 창이 다시 열릴 수 있다면 ♧ 봄날 - 송기용 통도사 홍매화 피는 날에는요 마음 비운다는 거 말짱 공염불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안거 면벽수행이 무슨 소용인가요 꽃가지 저어기 안짝 어디에 불현듯 붉은 매화망울 세상번뇌 세상 인연 다 그렇게 돋을 것인데요 잊는다는 게 어디 그리 쉽나요 절마당 매화꽃 피는 날.. 2023. 10. 16. 양순진 생태동시집 '반딧불이 놀이터'(4) ♧ 자주괴불주머니 달팽이들이 자주색 옷 잎고 땅으로 땅으로 내려와 주머니 가득 담고 온 봄 향기 전하려고 ♧ 개미의 탑 세렝게티 넓은 초원 한가운데 우뚝 솟은 토성 초원의 개미들이 한 입 한 입 물어다 단단하게 지은 흙탑이라는데 회오리바람 불어도 번개가 번쩍여도 쓰러지지 않는다 고 자그만 개미들이 불가사의한 탑을 완성했다는 건 혼자가 아니라 함께 했다는 것 하루아침에 이룬 것 아니라 수천수만 밤 땀 흘렸다는 것 그런 이유로 개미는 인류 최고의 건축가 ♧ 나뭇잎 우주 비가 올 듯 말 듯 바람은 불 듯 말 듯 화분에서 땀 뻘뻘 흘리는 달개비 어, 뭐지? 돌돌 말려 있는 잎사귀 하나 하얀 거미줄로 꽁꽁 감싼 채 엉켜진 보풀 슬몃 떼어보니 글쎄, 애벌레가 꿈틀꿈틀 애벌레에게 이 잎사귀 귀퉁이가 우주 얼른 손 떼.. 2023. 10. 15. 월간 '우리詩' 10월호의 시(2) ♧ 너울성 파도 - 강동수 태풍이 지나간 뒤 바다로 나가보았다 파도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남기고 떠난 태풍의 꼬리를 잡고 요동친다 이런 날은 내 마음도 너울거려서 꼭 할 말을 해야 하는데 다하지 못하고 돌아서는 그런 날처럼 입술은 침묵을 강요당한다. 예고 없이 방파제를 넘나드는 포말들 나는 누구의 마음을 넘어서 가슴에 흰 얼룩을 남긴 적 있었던가 일기예보는 일렁이는 파도에 파랑주의보를 남기지만 아직 오지 않은 먼 곳에서의 태풍의 눈이 화면을 채우는 오후 세상을 사는 것이 일렁이는 파도 같아서 먼 길을 달려온 파도를 견뎌야하지만 예고 없는 이별들은 긴 상처를 남기고 사라지는 너울성 파도 같은 것 오늘이라는 시간을 지나며 한 번도 건너가보지 않은 또 다른 파도를 건너야하는 날들이 다가오고 있다 ♧ .. 2023. 10. 14. 월간 '우리詩' 10월호의 시(1) ♧ 고드름 - 전선용 고드름을 생각하다가 베드로라고 쓴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그는 외골수, 땅을 지향한 죽음 고드름 같은 몇 번의 죄가 문신이 되어 하늘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영혼을 위해 잡아도 잡히지 않는 박해를 위해 고드름도 피땀을 흘린다는 사실 물구나무선 채 죽어간 그가 저녁 무렵 소름으로 자라 내 피부에 자랐다 거꾸로 매달린 것과 뒤집어야 바로 보이는 것들 시체 같은 겨울, 고드름은 흔적 없이 사라질 우리의 사자 굴이다 ♧ 법가法家 - 김석규 제자백가시대의 법가는 상앙商鞅 관중管仲 申不害(신불해)를 거쳐 한비韓比가 계승하였는데 이는 법을 유일한 방법으로 하는 정치사상으로 한비자韓非子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韓나라 임금 소후昭侯가 술에 취해 자고 있을 때 임금의 관과 모자에 .. 2023. 10. 13. 이전 1 ··· 63 64 65 66 67 68 69 ··· 7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