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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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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제주작가' 여름호의 시(7) ♧ 사막 여행 – 김병택     햇빛이 작열하는 날에야 소원대로 사막을 길을 수 있었다 사막은 거친 바람으로 가득했다 여행 전에 머리에 떠올렸던, 무지개가 뜨고 미풍이 불며 길가에 야생화들이 웃고 있는 사막은 천국에서나 있을 법했다 쉬지 않고 부는 바람은 멈출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를 더욱 막막하게 한 것은 가야 할 방향을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였다 오아시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곳이 존재하는 건 확실했지만 거기엔 번들번들한 샘물과 샘물을 둘러싼 주변에 지친 모습으로 서 있는 몇 그루 나무가 고작이었다    거듭 쌓이는 피로가 륙색 안의 곳곳에까지 스며든 것을 무게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 한가운데로 몰려들었다 이 국면을 벗어날 방안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결국, 우리는 .. 2024. 9. 20.
조직형 시집 '천 개의 질문'의 시(4)와 나무 ♧ 천 개의 질문    오후의 역광으로 찍는 뷰파인더 속 나무 한 그루 시커먼 실루엣으로 하늘을 떠받친 채 무섭게 서 있다   천 년을 넘게 산 은행나무   거대한 나무 밑에 서서 고개를 꺾어 하늘같은 꼭대기를 쳐다본다 나무의 끝을 알 수가 없다   세상일이 안과 밖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면서 부동의 자세로 대웅전을 바라보는 나무   저 가지 어딘가에 붙었던 나뭇잎으로 수많은 인연이 겹을 만든다 아직 이루지 못한, 가지에 매달고 있는 천 개의 질문   천 개의 눈이 있고 천 개의 귀가 있어 천 년을 산다는 것은 나무 하나만의 목숨은 아닐 것이다   그에 일 할도 안 되는 목숨으로 그를 엿보는 것 같아 가슴이 쿵쿵거린다   나는 아득한 나무 앞에서 너무 높게 .. 2024. 9. 19.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완) ♧ 까마중    도두봉 갔다 오다 잠시 멈춘 걸음에   까맣게 익은 아이 날 보며 웃고 있데   잡힐 듯 말 듯한 시절 아련히 다가왔네   까마중, 얼마나 순도 높은 빛깔이었나   목마름 깊을수록 최대치로 끌어 모아   한입에 밀어 넘기면 배냇짓처럼 얹힌 단물     ♧ 고봉밥    아들 밥 뜰 때마다 그 말씀 생각난다 사람은 밥심으로 살아가는 거라며 사발꽃* 수북이 피듯 고봉밥 떠 주셨지   비수로 꽂힌 말도 누르면 지나는 것 쉰다섯 혹은 여섯 내 삶의 급커브길 꾸욱꾹 눌러 담아야지 세상 실은 고봉밥   --- * 사발꽃 : ‘수국’의 제주어.     ♧ 부끄럽다    당산봉 아버지 산소   옆에서 늘 지키는   등 굽은 소나무에게 .. 2024. 9. 18.
김항신 시집 '연서戀書'의 시(6) ♧ 외로운 여정 3    -해안 길 걸으며    병명도 애매모호 하다는 의사의 진단 지치고 아픈 심사   바다를 끌며 올라오는 멸치나 무상함에 걷는 그녀나   매운바람에 일렁이어 천방지축 밀려든 은빛 물결들 컨테이너 화관에 몸담고 끌려가는 모습은 바다가 내어 주는 생멸 세월 따라 유영하던 너희 꿈은 어디서부터였을까   모호하게 꿈결 속 누비다 빠져나오는 붉은 돌기들의 아우성 세월 따라 잠복하던 너희 꿈은 어디서부터일까   몸이 내어주는 생멸인 대상을 포진하던     ♧ 접시꽃 당신    수탉과 접시꽃의 ‘합의 일체’ 오매불망 소원하던 하안 꽃송이   순애보처럼 파노라마 되던 날 정이가 잉태되고 오라비는 유실됐다 민이가 아들이길 소망하듯 위로하던 날   .. 2024. 9. 17.
충주호(청풍호)의 사계 2024. 9. 16.
계간 '제주작가' 여름호의 시(6) ♧ 늙은 작가의 노래 - 강덕환    자기가 본 것, 아는 것만 진리라고 여기며 무리를 지어 장르, 동문, 성씨, 고향 성향단위로 조직을 만들고 여기에 금일봉을 쾌척하여 대표 자리를 맡아 명함에 새겨 선거 때마다 흥정하며 보조금, 광고에 골몰한다   등단연도나 매체를 따져 이러쿵저러쿵 대접받기를 원하고 중앙문단이 어떻다거나 유명 작가와의 인연을 자기 작품의 질과 동일시한다   발표한 작품 권수와 수상경력은 기를 쓰고 프로필에 꼭 집어넣으려하고 다 그런 건 아니라며 시치미를 때는 걸 보면 나 또한 늙었나보다     ♧ 사과나무 이야기 - 강동완     우리집 뒤뜰에는 사과나무 한그루가 외롭게 심어져 있어 노을이 지는 저녁 사과나무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어둠 속에서 눈물이.. 2024. 9.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