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417 김윤숙 시집 '저 파랑을 네게 줄 것이다'의 시(7) ♧ 바위떡풀 떡 하나 오롯 주면 바위를 내어주랴 골짜기 숲 절벽 틈새 공중에 핀 야생초 한동안 외롭지 않다, 둘이 서로 받들어 ♧ 덖음차 새파란 청춘 그 어디 등 비빌 데 있었나 접히고 꺾인 이파리 제 몸에 입힌 상처 아홉 번 넘어지고야 수굿이 저를 놓아 노스님 손바닥에 배어든 찻잎 하나 삭정이 뾰족한, 내게도 물이 들어 땀내도 풀 비린내도 참으로 잘 덖어낸 시절 ♧ 파노라마 어제 한 약속이 새까맣게 지워졌을까 숲 기슭 가을볕에 끌려 나은 누룩뱸 논오름 곶자왈 위로 빙빙 돌던 제주 참매 야생의 눈빛에도 때로는 어긋나서 빗살무늬 활엽수림 불사르는 가을 앞에 자욱이 취하던 연기 자꾸 발을 헛디뎌 등성이 떠.. 2024. 9. 29. 계간 '제주작가' 여름호의 시(8) ♧ 수제비 - 김항신 수깔로 떵으네 수제비엔 ᄒᆞ던 날 ᄌᆞ베긴 손봉오지로 ᄌᆞᆸ아댕견 놧갯주 모ᄆᆞᆯ ᄌᆞ베긴 몸풀젠 놔시카 난 먹어보도 못흔 시절 지실 ᄌᆞ베긴 감자로 멩근 것이엔 헤도 난 먹어보도 못ᄒᆞᆫ 비발애기 보리 ᄌᆞ베긴 신 사름덜 먹는 거렌 ᄀᆞᆯ암ㅅ주마는 우리어명 막불 ᄀᆞ를 ᄀᆞ져당 메리치 서너개 송키영 드리치민 국물만 후룹후룹 ᄒᆞ던 맛 아덜도 나 닮안 국물만 후루룩 ♧ 미스타페오 – 문경수 엊저녁 여름 바다의 서러운 불새여 나 눈 멀기 전 남김없이 밤으로 간다면서 하늘에 하안 깃털을 흘리고 갔구나 눈 어지르는 한치 잡이 배 무리 앞에서 설원의 추위를 견디는 동안, 어떤 울음소리는 무릎걸음으로 오는 듯하더니 내 맘을 .. 2024. 9. 28. 월간 '우리詩' 9월호의 시(5) ♧ 그가 나를 물어뜯었다 – 이기헌 지독하게도 물어뜯었다 나의 내면에 감추어진 추잡한 기억들을 몽땅 파헤쳤다 쓰레기봉투에 은밀히 담아 남모르게 버리려 했던 비밀들을 철저하게 들추어냈다 지칠 줄 모르는 끈기로 집요하게 달려들어서는 나의 치부를 모조리 까발려 놓았다 지난밤 꿈자리가 사납더니 밤새도록 끈질기게도 달려들었다 그렇게 온 동네 창피를 주고 녀석은 담벼락 위에 태연히 앉아 당황하는 나를 지긋이 내려다본다 부끄러움은 오로지 나의 몫, 처참하게 흐트러진 마음을 누가 볼까 서둘러 추스른다 ♧ 등불 - 이인평 기도 마음이 어둠인지를 본다 몸 안에 빛이 있는지를 빛인지 어둠인지 안과 밖을 보는 눈이 성한지를 손 모아 살핀다 대낮에도 어둠인 몸 .. 2024. 9. 27. 조직형 시집 '천 개의 질문'의 시(5) ♧ 민들레처럼 아무데나 빗줄기가 스며드는 곳이면 보따리를 풀고 건조한 바람에 실려 온 고단한 몸을 부렸다 얼마나 깊이 내려가야 발이 닿을지 닫힌 문 앞에 마냥 서 있었다 관절마다 갈퀴 같은 옹이박이고 텅 빈 뱃속을 드러낸 팽나무가 속절없이 예각으로 기울 때에도 나 여기 끄떡없이 서 있었다 강물은 깊어 돌을 굴리지 못하고 온몸으로 쓰다듬고 지나가지만 왔던 길을 뒤 돌아보지 않는다 어스름 땅에 납작하게 붙어 도도하게 하늘 향해 주먹 내지를 때 뿌리는 묵묵히 깊은 우물물을 길었다 내 몸이 긴 그림자 비울 때 둥근 바람을 받아 날기 위해 깃을 팽팽하게 세우고 처음부터 나 여기 꿋꿋이 서 있었다 ♧ 위험한 집 새는 두 칸의 집을.. 2024. 9. 26. 월간 '우리詩' 9월호의 시(4)와 감 ♧ 여름밤, 여름비 - 김종욱 여름날, 여름빛 능소화가 지듯이 깨끗이 한꺼번에 져 버리는 날과 빛이 다 어제 같구나 그러나 마음에는 썼다 내겐 가장 달콤한 너의 웃음은 검은 것들이 반짝이기 시작하며 번뜩이는 어둠 속 고혹한 자맥질, 날카로운 비명의 수심, 애수의 박자와 선율은 비에 젖어 일어나지 못하는 나비, 빛, 어둠 사선으로 칼날을 세우는 잎사귀라는 소름 그 유한한 연주, 그리고 나의 춤 뒤집혀버려 빛나는 검푸른 여름비… 여름밤… 후두둑 두들기는 어둠의 리듬 ♧ 노동가 - 박태근 가자 가 오늘도 일하러 가자 밤새 그려 본 도면 뜯었다 붙였다 이리 갸우뚱 저리 갸우뚱 거치적거림 없이 착착 휘어감은.. 2024. 9. 25. 김항신 시집 '연서戀書'의 시(7) ♧ 그곳, 1. 그때는 몰랐지만 오늘은 알았다 고사리 찾던 노루손이길 금실 좋은 오〜 나기철 시인 머무는 곳 2. 평화공원 오가다 마주치는 길목 이곳에 오면 양로원이 있고 그 앞에 집과 차 한 대 농기구와 창가에 머무는 햇살과 바람 한 점이 주는 정오의 시간 3년째 기웃대다 커브를 돌리던 이곳엔 노루손이 따다 남은 벳고사리 그 쫄깃함에 젖이 ♧ 소리 궁금하다 어떤 울음으로 시를 지을까 여름에서 초가을까지 수컷들은 두 날개 비비며 암컷 부른다는데 얘들은 잠시 땅속 머물다 풀숲에 나와 날갯죽지 문장을 쓴다는데 소리들 베껴 쓴다 순서는 바뀌거나 말거나 살기 위해 먹기 위해 뛰기 위해 찢어지게.. 2024. 9. 24. 이전 1 ··· 5 6 7 8 9 10 11 ··· 70 다음